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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Nov 25. 2022

자기 직업을 싫어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걸까

열정없이 일하면 안되나요

 오늘 오랜만에 정신과에 다녀왔다. 거의 두 달만이었다. 2년째 2형 조울증으로 약을 타다 먹고 있는 데 병원이 50일 영업정지처분을 받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두 달 만에 만난 선생님하고는 생각보다 오래 상담이 가능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오전이라 마지막 대기 환자가 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영업정지 기간 동안 다른 데서 처방받은 약은 어땠는지, 잠은 잘 자는지, 꿈은 꾸는지 등등 으레 하시던 질문들을 하셨다. 


 보통이었으면 이런 질문에 근황 조금 하고 약 처방에 대한 설명이면 상담이 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걸 여쭤보셨다. 


  "뭐하고 지내셨어요?"


 "어… 그냥 일하는 데 많이 한가해서 도자기 만들러 다녔어요."


 말 앞에 붙는 '어…'는 조울증, 우울증 때문에 생각을 오래 하게 되면서 생긴 버릇이다. 바로 사고와 표현이 빠릿빠릿 이뤄지지 않으니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말하기 전에 "어…"소리가 먼저 나온다. 

 

 "메간 씨 내년 목표는 뭐예요?"


 "어… 내년 초에는 도자기 공모전 출품작 준비를 하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단체전시회가 있어서 그거 준비할 생각이에요."


 한참을 생각했다. 다짐 말고 목표, 목표를 세워본 게  언제였더라? 


 취준 할 때 좋은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세운 목표? 유학시절 시험에 합격하는 목표?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한 것은 맞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도자기 공방에 얼마나 계세요?"


 "월, 화만 가는 데 일이 한가하면 4~5시간씩 있는 거 같아요. 안 가는 날은 그날만 기다리고…."


 "도자기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목표는 생각해본 적 없어요?"


 "네. 전 지금 하는 일은 좋아하질 않아요. 지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하고 있는 거예요. 생계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선생님은 차트에 뭔가를 적으셨다. 상담할 때 뭔가 갑자기 뭔가 적는다는 건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또 내가 말을 잘 못 한건 아닌지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아직 나아지려면 갈 길이 좀 남은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번 생을 혐생이라고도 하고, 누가 회사를 좋아서 다니냐고도 말하고, 친구들은 술만 먹으면 직장을 때려치우고 만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에게 내년 목표를 물어보면 어떤 대답을 할까? 일에 관한 목표가 있을까? 

  

 모르겠다. 내 주변은 우선 일하면서 보람도 얻고 성실하게 일하긴 하던데. 난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지. 친구들은 배부른 소리 하지 말랐지만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었다고 해도 우리 부동산은 나쁘지 않게 번다. 돈 걱정은 안 하고 살 정도로. 그런데 다른 중개사님처럼 내년에 '아우디 사기!', '계약 몇 건 하기!' 이런 목표조차 없다. 그냥 눈떴으니 출근하고 일하고 해가 지니까 퇴근한다. 


 내 원래 꿈은 초등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팔면서 저녁에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였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삶이고 가족 중 누구도 내 꿈에 동의해 주는 사람이 없기에 아직도 꿈만 꾼다. 


 근데 그냥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내가 원하는 직업이 아니라 목표가 없다는 것이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는 의미인 걸까? 날씨도 좋은 데 괜히 점심부터 사춘기 소녀 같은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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