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외로움 즐기기- 결국은 지나가는 것들

외로움과 함께한 소소한 행복

by 자청비
저녁에 혼자 낯선 호텔 방에 앉아 있는 일은 그 자체로 외롭다.
하지만 정상적인 일이자 당연한 것이기에, 마음을 조금만 바꾸면 그 시간마저 즐길 수도 있다.
나를 몰아붙이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런 잠깐의 낙담과 슬픔, 우리는 그것을 ‘우울감’이라 부른다. - p135, 『어른을 위한 인생 수업』


나는 15살, 흔히 말하는 ‘중2병’이라 불리는 나이에 집안의 부도를 맞았다.

어른들은 “넌 공부만 잘하면 돼”라며 나를 학원가로 밀어 넣었지만,

정작 그곳에서 당한 부당한 일을 이야기해도 “해결됐다”는 말만 남긴 채

나를 다시 그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부도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저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간다고만 생각했다.

단순하고 순진하고, 어쩌면 멍청하기까지 했던 시절이었다.

학교 앞에서 500원이면 사 먹을 수 있던 컵떡볶이가 먹고 싶어 천 원을 달라 했을 때 돌아온 말은,


“넌 왜 맨날 돈만 달라고 해? 저번에 준 건 다 어디다 썼어?”

“내가 돈이 어딨니?!”라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도망가고 싶었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없어지면 돈에 대한 부담이 덜해지지 않을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까지 했다.

나 때문에 돈이 새어 나간다는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말도 없이 중국으로 떠난 아빠가 보고 싶었다.

집안의 부도 탓에 아빠가 중국에서 다시 시작하려 했다는 것도 몰랐다.

부모님은 나에게 이렇듯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가면 숨통이 트일 줄 알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공부의 압박도 없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현실은 더 냉혹했고, 나는 더 무너져갔다.


사춘기였던 나는 부모의 가이드가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엄마는 한국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아빠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느라 우리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결국 나는 방임 속에서 더 깊은 결핍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 시절, 나의 유일한 친구는 불법 DVD였다.

불법이 난무하던 시절, 나는 가게에서 몇 시간을 서성이다 간신히 영화를 골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둡고 차가운 거실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울고 웃었다.

영화는 삶을 알려주는 가이드이자, 외로움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 시간을 견디다 보니 외로움이 오히려 친구가 되었다.

외로움을 잘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우울감이 더 깊어져 훗날 나를 힘들게도 했지만, 그것마저 결국은 지나갔다.


모든 것은 그렇다.

지독하게 외로운 순간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우울도,

결국에는 반드시 지나가는 잠깐의 시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