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를 알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 나의 과거
어릴 적 나는 정서적 결핍이 심한 사람이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늘 사랑만을 갈구하며 살았다.
불안정한 나를 붙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래서 늘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잦은 상처와 실패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건 결혼과 출산을 지나오면서였다.
나는 정서적 결핍을 안고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부모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넌 어릴 때 사랑 많이 받았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사랑을 원하니?”
하지만 부모님도 모르는 걸,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항상 바쁘셨던 부모님 곁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사랑의 언어 검사를 하게 되었고,
내 사랑의 언어 1순위가 ‘인정’, 2순위가 ‘함께하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의 과거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정서적 결핍이라는 단어는
첫 아이를 낳고 막막하던 시절, 육아서적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왜 그렇게 엄마와 함께하고 싶어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엄마 언제 와?”,
“엄마 밥 먹었어?”,
“엄마랑 같이 밥 먹고 싶어.”
“엄마, 나랑 영화 보자.”
하며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늘 바쁜 엄마는
그 마음을 다 받아주기엔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짝을 비교적 일찍 만났고, 이른 결혼을 선택했다.
마음이 쉴 수 있는 안정적인 안식처를
하루라도 빨리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결혼은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겠지만,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변함이 없다.
남편 덕분에 나는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남편의 인정,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했다.
의도적으로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채워주자고 약속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불안을 안아주고, 결핍을 채워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이제는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밥을 차리고, 밥을 한다는 건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할머니가 밥으로 나를 사랑해 주셨듯,
보고 자란 것이 밥이었기에
나는 오늘도 밥상에 마음을 담는다.
오늘 하루
밥을 잘 차렸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잘 챙겼고,
해야 할 집안일을 해냈다면
나는 나에게 말해준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어.”
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도
매일 감사할 수는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사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지금의 나는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