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나는 왜 그렇게 사랑을 원했을까

사랑의 언어를 알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 나의 과거

by 자청비

어릴 적 나는 정서적 결핍이 심한 사람이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늘 사랑만을 갈구하며 살았다.

불안정한 나를 붙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래서 늘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잦은 상처와 실패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건 결혼과 출산을 지나오면서였다.

나는 정서적 결핍을 안고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부모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넌 어릴 때 사랑 많이 받았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사랑을 원하니?”


하지만 부모님도 모르는 걸,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항상 바쁘셨던 부모님 곁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사랑의 언어 검사를 하게 되었고,

내 사랑의 언어 1순위가 ‘인정’, 2순위가 ‘함께하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의 과거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정서적 결핍이라는 단어는

첫 아이를 낳고 막막하던 시절, 육아서적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왜 그렇게 엄마와 함께하고 싶어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엄마 언제 와?”,

“엄마 밥 먹었어?”,

“엄마랑 같이 밥 먹고 싶어.”

“엄마, 나랑 영화 보자.”

하며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늘 바쁜 엄마는

그 마음을 다 받아주기엔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짝을 비교적 일찍 만났고, 이른 결혼을 선택했다.

마음이 쉴 수 있는 안정적인 안식처를

하루라도 빨리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결혼은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겠지만,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변함이 없다.


남편 덕분에 나는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남편의 인정,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했다.


의도적으로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채워주자고 약속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불안을 안아주고, 결핍을 채워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이제는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밥을 차리고, 밥을 한다는 건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할머니가 밥으로 나를 사랑해 주셨듯,

보고 자란 것이 밥이었기에

나는 오늘도 밥상에 마음을 담는다.


오늘 하루

밥을 잘 차렸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잘 챙겼고,

해야 할 집안일을 해냈다면

나는 나에게 말해준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어.”


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도

매일 감사할 수는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사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지금의 나는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