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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엄마 Jun 06. 2023

엄마의 하트 스티커

용기의 싹

감자가 거실에서 블록놀이를 하고 있어요.

블록을 가지고 놀던 감자는 장난감방에 있는 토끼인형을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감자는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장난감방에 같이 가서 토끼인형 가지고 와요."

"감자야 엄마는 지금 요리를 하고 있어서 바쁘단다. 감자가 혼자 다녀와볼래?"

감자는 혼자 장난감방 문 앞에 섰어요.

장난감방 문 앞에 서자 감자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없는 장난감 방에서 괴물이 나올 것만 같았거든요

지난밤 엄마가 읽어줬던 동화책에서 공주를 괴롭혔던 괴물이었죠.

감자의 눈앞에 무시무시한 그림이 그려졌어요.

"꺄악!!! 엄~~~ 마~~~!!!"

감자는 소리를 지르며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감자야, 왜 그러니."

"엄마, 무서워요. 장난감 방에서 괴물이 나올 것 같아요. 같이 가요."

감자는 엄마 손을 잡고 장난감 방에 들어가 토끼인형을 가지고 나왔어요.

주방으로 돌아간 엄마는 정수기 위에 있는 빨간색 하트 스티커를 꺼냈어요.

엄마는 하트스티커를 감자의 손등에 붙여주며 말했죠.

"감자야, 이건 엄마의 손이야. 감자가 하트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면 항상 엄마 손을 잡고 있는 거야.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도 끄떡없겠지?"

"네, 엄마."

엄마가 손등에 붙여준 작은 하트 스티커를 보자 감자는 엄마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든든했어요.

토끼인형이랑 블록놀이를 하고 있던 감자는 공주인형을 가지고 오고 싶어 졌어요.

다시 장난감 방에 들어가야 했죠.

혼자 장난감 방에 들어가려니 겁이 났어요.

하지만 감자는 손등에 붙어있는 하트스티커를 보며 용기를 냈어요.

야무지게 입을 앙 다문 감자는 장난감 방 문 앞에 섰어요.

그리고 하트스티커가 붙어있는 손으로 방 문을 열었어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감자가 상상했던 무시무시한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인형친구들이 감자를 기다리고 있었죠.

감자는 공주인형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왔어요.

두근대던 감자의 마음이 코 끝까지 벅차올랐어요.

오늘 감자에게는 용기의 싹이 하나 생겼어요.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럴까요? 우리 집 감자는 무서운 게 참 많은 아이예요. 중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무섭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워하죠. 장난감 방에서 놀고 싶을 때는 항상 엄마나 아빠가 같이 들어가야 돼요. 잠들기 전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한동안은 겁이 많은 감자가 걱정스러웠어요. 다른 아이들도 이렇게 무서워하는 게 많은지 궁금했죠. 주변에 물어보니 아이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저는 감자가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 걸까 싶어서 물어봤어요. 해결책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감자를 공포에 물들게 하는 건 간단명료하게 한 가지로 정의되는 게 아니었죠. 어느 날은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라 괴물이 나올까 봐 무섭고 또 어떤 날은 동화책에서 봤던 마녀가 튀어나올까 봐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감자는 호기심도 많았지만 겁도 많은 아이였던 거죠.


제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저랑 남편 중 겁 많은 사람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누굴까. 겁쟁이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이. 알고 봤더니 저였어요. 제가 초등학생이던 어린이 시절, 전설의 고향이 유행이었어요. 기억에 남는 드라마 주제는 '인간이 되고 싶은 구미호'에요.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도 내용이 궁금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끝까지 보고는 했어요. 그러고는 잘 시간이 되면 침대 밑에서 뭐가 튀어나올까 봐 무서워서 할머니를 찾아 뛰어갔어요. 가끔 베란다에 있는 책상에 가는 것도 무서웠죠. 서랍장에 찢어 넣은 분신사바 종이가 있었거든요. 저는 귀신이 튀어나올까 봐 베란다 문을 꽁꽁 잠가두고는 했어요.


저의 어린이 시절을 회상하고 보니 감자의 공포심이 이해되더라고요. 어른이 된 저도 가끔씩은 혼자 자는 게 무서운데 5살 된 감자가 괴물이 무서운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공포심이 생기는 건 성장하는 과정 중 일부였던 거예요. 저는 감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어요. 언제까지 장난감 방이 무서워서는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주방에 있는 하트스티커를 감자 손등에 붙여줬어요. 그리고 말했죠.

"감자야. 하트 스티커는 엄마의 마음이야. 하트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면 엄마랑 어디든 같이 가는 거야. 그럼 감자의 상상 속 괴물한테서 지켜줄 거야. 이제 장난감 방에도 혼자 갈 수 있겠지?"


'엄마의 하트 스티커' 동화도 얘기해 줬어요. 감자는 하트 스티커를 소중하게 꾹 누르면서 좋아했어요. 이제 한시름 놨다 싶었는데, 공포심을 지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감자는 장난감 방 앞까지 다가섰다가 엄마를 불렀어요. 아직까지는 엄마가 붙여준 하트 스티커보다 괴물의 공포심이 더 컸나 봐요.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잖아요. 동화 속 감자처럼 우리 집 감자도 언젠가는 용기의 싹이 생겨 장난감 방에 혼자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응원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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