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살이 1년 8개월 차. 탈서울을 주제로 사진과 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친구 없다고 글 써놓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로부터 1년도 되지 않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 작업은 강릉의 청년모임 '솔방울들'을 통해 만난 예술가 임호경님과 함께 하였다. 이 모임에서는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고, 실명대신 '별명'을 쓰고, 존댓말대신 '평어'를 쓴다. 그가 몇 살인지 알고 싶지 않았고, 그 또한 애써 말하지 않았다. 그날의 분위기, 느낌 그대로를 담기 위해 인터뷰 또한 애써 존댓말로 수정하지 않기로 한다.
이탈;서울
예술작업자 임호경 이야기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보니 정말 재밌다!
2023년 4월 일어난 강릉 산불 현장이네.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야?
불탄 나무와 관련된 작업을 했었어.
'상영정'이라는 정자가 비 오는 날 운치 있다고 들어서
비 오는 날 와보진 못했지만, 혼자 앉아서 호수 보고 그랬던 곳이거든.
그런데 산불이 일어나면서 다 타버린 거야.
또 그 시기, 노래를 하고 연기를 하던 오랜 친구가 하늘나라로 가서, 죽음과 생에 대한 작업을 하게 됐던 거 같아.
세상을 떠난 존재에 대해 작업을 하는 것에 조심스럽고, 고민이 있긴 했지.
그렇지만 이렇게 오래된 나무가.. 100년도 더 넘은 이런 나무들이 삽시간에 불타 재가되어 버린 것보다 더 능가하는 무언가가 당시 나에겐 없더라고.
그래서 어떤 작업으로 이어진 거야?
설치 작업을 했어. 불에 탄 나무가 캔버스 위에 서있는 형태로. 이따금 캔버스 위에 죽음 후의 나이테를 그리는 퍼포먼스도 진행했어. 불에 타고 남은 나뭇가지로 검은 원을 그렸지. 전시는 강릉시립미술관, GIAF-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2023 <서유록>에서 진행했었어.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의 그림은 4년 전쯤 그린 건데, 얼음과 불이 공존하는 이 이미지처럼
동시에 같이 있을 수 없는 존재들이 잠깐이나마 같이 있는 상태에 관심이 있거든.
재가 된 나무에도 초록색 새순이 자라나잖아.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은 다음의, ‘죽음이 있음’ 이후의 ‘생’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작업으로 담으려 했어.
그러면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있어?
오래전, 바다 수영을 하다가 죽을뻔한 적이 있어.
바다에 대한 지식이 지금보다 아주 없던 시절의 이야기야.
눈 오는 날 혼자 어떤 바위섬까지 헤엄쳐 다녀오는 영상 작업을 하다가 저체온증이 왔고, 물속에서 몸이 굳어 수영을 거의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어.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소리를 지르면서 방파제 쪽 뭍에 간신히 도착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보통 때라면 잘 올라가던 테트라포드를 체온이 내려가 근육이 굳어서 올라가지 못하는 거야. 계속 올라가려고 애쓰다 보니까 바위에 몸을 찧어서 피가 나는 사태에 이르렀어.
간신히 테트라포드를 옆으로 붙잡고 기어서 해안까지 왔고, 숙소에 가서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어. 정신을 차려보니까 여전히 물이 틀어져 있고, 피가 흐르고 있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한 짓이었는데, 그 시절 즈음에는 몇 번 삶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거든. 근데 막상 죽음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경험해 보니 아주 찰나에 살고 싶은 본능과 호르몬이 막 나오더라고. '생의 의지' 같은 거. 돌이킬 수 없는 그 느낌을 겪어보니까 오히려 삶을 포기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거 같아. 그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의 느낌이 참 싫었어.
퍼포먼스도 하고, 글도 쓰고, 배우도 하고, 영화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는데.. 다른 사람에게 본인을 한 마디로 소개해야 한다면 뭐라고 이야기할래?
'예술작업자'라는 말을 골랐어.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결국 예술의 범주 안에서 행해지는 작업과 ‘WORK’의 개념이더라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를 봤었는데 예술가, 화가들이 동경예술대학교로 유학 가던 근현대 시기 미술 입시에서는 문학적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었대. 예술이라는 건 특정 사고와 풍취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시, 서, 화로 갈라지는 것이고, 나는 그 이전의 관점에서 경계 없이 혼재된 형태의 작업을 하고 있다 생각하려고 해. 범주와 분화는 무언가가 발생한 시기 이후에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기에.
어쩌다 강릉까지 와서 작업하게 된 거야?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여러 아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었어. 레지던시는 예술가들에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작업실과 거주 공간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야. 당시 서울에 작업실이 없기도 했고, 다른 지역에 가서 작업을 할 때 일어나는 감각의 변화를 오롯이 경험해보고 싶었어.
'강원 작가의 방'이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춘천과 강릉에 작업하러 오게 됐고, 강릉에 있는 ‘파도살롱’이라는 코워킹스페이스, 춘천의 화실카페 ‘엠프티 페이퍼’등 에서 작업을 했었어.
레지던시를 통해 내가 지내는 지역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공간과 연결된 다양한 작업적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제주(아트랩와산)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으로 작업을 이어나갔어. 그렇게 남쪽과 서쪽의 바다를 한 시절씩 다녀왔지만, 다시 동쪽 바다에 오게 됐어. 강릉!
'바다가 있어야 된다는 지점'과 '지역에서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점'이 두 가지가 맞물리는 게 강릉이었거든. 제주의 시간들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생업을 위해 서울을 자주 오가야 하는 현실적 요건들도 고려하게 되더라고.
죽을 뻔한 경험을 줬는데도 바다가 좋아?
바다가 좋아. 증조할머니가 제주와 부산 영도에서 해녀로 활동하셨어.
'피'라는 게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바다 수영을 좋아했어. 지금은 프리다이빙과 스쿠버 다이빙도 하고. 그냥 잠수도 하고...
우리는 육지동물이라 육지에서 살지만, 예를 들어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 물속이라는 다른 세상에 가는 느낌이거든. 이 세계의 논리와 로직이 적용되지 않는 세상.
다른 세상을 한 번씩 갔다 와야 이 세상에 사는 내가 미치지 않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치다'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살면서 어떤 머리 아픈 것들과 경험이 이렇게 한 번 다른 곳을 다녀오면 전환되는 느낌이거든. 이렇게 내게 즉각적인 치유와 환기를 주는 게 '바다'인 거 같아.
강릉에 살아보니 작업이 잘 됐어?
강원 작가의 방 레지던시를 진행했던 게 2020년이라 기억에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창작의 환경이 제공되고 조성되니 ‘작업의 시간’이 자연스레 따라오는 느낌이 있었어. 나에게 시각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자연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도 당연히 좋았어.
서울에 비해 인구밀도도 적으니까 오롯이 혼자 한적하게 있을 수 있는 상태도 도움이 됐었지.
그럼에도 강릉에 완전히 정착하지 않고 서울을 오가는 이유는 뭐야?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배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서울에 있어야 하는 시간들이 있거든.
그리고 어떤 면에선 '관계' 때문이기도 해. 사람은 관계가 필요한 동물이고,
오랜 벗들이 서울에 있다 보니 종종 느끼는 고립감(?)이 나를 서울로 보낼 때도 있어.
그래서 강릉에서 새로 교우하게 된 친구들이 소중하게 다가와.
강릉에 있을 때 서울 생각하고, 서울에 있을 때 강릉 생각하게 되고... 그런 거지.
작년에 강릉에서 전시 준비할 때는 강릉에 있는 비중이 더 많았고, 서울에 일이 있을 때는 서울에 있는 비중이 많아지고.
결국 나를 작업적으로 불러주는 곳에 더 많이 있는 거 같아.
강릉에서 친구들은 어떻게 사귀었어?
강릉에서 배우로 단편영화 작업을 몇 번 했었고, ‘강릉 살자’라는 청년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알게 됐고, 작업을 같이 하는 것과 친구는 조금 다르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있는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도움 됐었지.
'강릉 살자' 프로그램 3기에 참여했을 때 수평어 문화를 처음 써봤는데 너무 좋았어. 전에도 이런 방식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여러 사람과 한 집단에서 써보니 생각보다 훨씬 좋더라고. 한국어 특유의 장벽을 없애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동시에 존중이 느껴지기에 좋은 문화라고 생각해.
그러다가 강릉살자 처럼 수평어를 쓰는 '솔방울들' 모임을 통해서 사람들을 더 알게 됐고... 또 올해는 강릉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니까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지?
워크숍은 어떤 내용으로 진행하는 거야?
강릉에 있는 여러 동네, 혹은 나에게 의미 있는 어떤 지역 자체를 의인화해서 짤막한 '극'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예를 들어 나에게 의미 있는 '송정'이라는 동네가 있다면, 송정이에게 편지를 써보기도 하고, 왜 유독 송정과 왜 함께 수영을 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송정을 인물화 해서 극을 만들어 연기까지 해보는 워크숍. 총 40시간의 프로그램을 짰어.
유럽에서도 지내본 적 있다고 했지? 한국과 어떤 게 다르게 느껴졌어?
아직 유럽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건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의 커넥션이 다르게 느껴졌어.
예를 들어 집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미술관에 간다고 했을 때, 앞서 가던 사람이 문을 잡아주거나 모르는 사람과 아이콘택트를 하며 미소를 짓는다거나 하는 아주 일상적인 일들. 그것들이 나에게 미세한 행복감과 자존감을 심어주는 느낌이 있어.
네가 누구든, 내가 누구든 '결국 우리는 사람이야'라는, 사회적 함의가 주는 소속감. 아니, 소속감이라기 보단 존중과 따뜻함. 조금 다르게 말하면 존재를 ‘알아차림’. 그런 게 유럽에서 시간을 보낼 때 조금 더 느껴졌던 거 같아.
낮은 행복지수와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우리나라에 그런 존중과 따뜻함은 필요한 거 같아.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 팔로워수는 얼마나 되는지.. 이 땅엔 마치 나의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으로 자기 증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운이 있잖아?
예전에 칸 영화제 갔을 때, 여러 배우들 감독들을 보고,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한 편으로는 누가 어떻게 더 잘났다며 우위를 가리는 방식의 사고보다, 어쨌든 '저 사람들 모두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우리가 하는 활동들이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면, 증명하지 않더라도 ‘존중’ 받을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럽에서의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을까?
2011년에 영국에서 몽골까지 자동차 횡단여행을 한 적 있어. ‘몽골 랠리’라는 일종의 페스티벌인데 영국에 있는 소방차, 앰뷸런스, 소형차를 몽골로 가져가서 기부하는 게 미션이야. 영국에서 2주 정도 준비를 하고, 몽골까지 약 6주를 횡단해야 했어. 몽골에서 타고 있던 차가 고장 나서 우연히 만난 다른 자동차의 도움을 받아 노끈으로 다음 마을까지 견인을 한 적이 있는데, 한참을 따라가다 보니 견인해 주고 있는 앞 차 번호판이 스위스 번호판인 거야. 운전자가 알고 보니 스위스의 은퇴한 대학 교수였어. 자신의 차를 몰고 몽골까지 여행을 왔대. 그게 새삼 너무 신기하더라고. 우리는 섬나라도 아니지만, 분단되어 있어서 연결되어 있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정말 피부로 체감했던 느낌이 생생해. 유럽에서 몽골까지 18,000km 왔던 이 짓을 딱 며칠만 더 하면 서울에 내 방 침대까지 바로 갈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한 곳에 정착한다거나, 집을 살 생각이 있어?
글쎄, 내가 자본이 조금 더 많았으면 사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거 같은데, 그 돈으로 여기저기 숙소를 잡고 여행하며 살 수도 있는 거니까... 투자의 개념보다는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고 싶어.
지금은 아직 구매하고 싶은 욕구가 크진 않아.
요트라면 사고 싶어. 바다 위의 집?
올해 요트 면허를 따려고. (요트 크루가 필요하신 분 연락 주세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강릉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야?
보통 가까운 남대천에 자주 가.
너무 크지 않고, 고요해.
혼자 얼음 와인을 마실 때도 있고,
천 길 따라 끝까지 가면 바다가 나와.
어쨌든 걸어서 바다까지.
그게 좋더라고.
서울이탈자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기록되시길 원하는 분들은 댓글 혹은 인스타그램 DM 주세요. 감사합니다.
Insta
interviewee : www.instagram.com/espace17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