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로의 첫 여정, 지구별 너 이렇게 컸니?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가득 찬 캐리어 2개를 들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나에게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포탈과도 같았기에 언제나 설레기 마련이었으나, 이날은 약간 상기된 채 공항으로 들어섰다.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짧은 여행들을 자주 해오긴 했으나 특별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브라질로 향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여행이 아닌 그곳에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순수 비행시간만 자그마치 26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이지만,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기분 좋은 긴장과 함께 비행기에 들어섰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은 이미 그 과정 자체에서부터 설렘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이런 설렘 덕인지 나는 기내식도 정말 맛있게 잘 먹는 편이다. (기내식을 따로 팔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비행기의 조그마한 창문으로 질리도록 감상할 수 있는 그 하늘조차도 그리워지기에
할 수 있으면 항상 창가 쪽으로 자리를 선택해 하늘을 보며 이동 과정을 즐기곤 했다. 그렇기에 여느 때처럼 브라질로 향할 때도 어김없이 창가 쪽으로 자리를 선택했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하지 못한 채...
기내의 좁은 공간을 통과해 자리에 앉자마자 황급히 벨트를 찾아 버클을 채운 후 괜스레 모니터를 만지작거렸다. 반 년에 한 번씩은 비행기를 타봤기에 출발 전 기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과 분위기가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이런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환승시간을 포함해 무려 30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정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었다. 직접 체감하기 전까지 기내에서 보내는 이 30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에 대한 인지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브라질과 한국을 오가는 직항 노선이 없기 때문에 브라질을 가기 위해서는 동아시아를 제외한 어느 곳이던지 무조건 경유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거쳐 가는 경로를 떠올리지만 사실 브라질로 향하기 위해서는 보통 미국을 포함해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지를 경유하곤 한다.
내 항공편은 인천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약 13시간 30분 이동 후, 공항에서 4시간을 대기하고 또 13시간을 이동 해야 하는 일정으로 비행시간만 약 26시간 이상이 걸리는 말 그대로 대이동이었다. 설렘 가득했던 첫 비행은 별 탈 없이 지나갔지만 환승국가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하염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비행기 탑승구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야속하리만치 가지 않는 시간을 붙들고 있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상파울루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다시 13시간이나 걸리는 이동을 해야 하지만 탑승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올라섰다. 그리고 또 끊임없는 기다림.
기내식을 아무리 좋아한다지만 1박 2일 동안 기내식만을 먹는 경험은 마치 사육을 당하는 듯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출발 전 밤을 새우고 온다 한들 첫 비행에서 지루할 만큼 잠을 이루고 온 터라 아무리 뒤척여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또 왜 이렇게 화장실은 가고 싶은지 장시간 비행에 지칠 대로 지친 이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며 자리를 비집고 지나가야 하는 일은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제야 장거리 비행에서 왜 창가 쪽이 아닌 복도 쪽 좌석이 더 비싼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인지구조를 가진 나 자신을 탓해보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두 번째 비행에서 아주 잠시지만 설렜었던 순간이 있다면 실시간 비행경로로 내가 아프리카 상공을 날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정도랄까? 그마저도 서른 번째쯤 쳐다보니 아직도 아프리카를 벗어나지 못했음에 탄식이 나왔다. 다리는 저리고 허리는 뻐근하다 못해 끊어질 것 같은 시간들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도착해간다는 기내방송이 들려오며 닫혀있던 창문을 열어보니 창 사이로 파랗고 새하얀 구름들이 보이고 그 아래로 딱 봐도 광활해 보이는 강줄기들이 보였다.
그 강줄기들이 아마존인가 하는 다소 무지성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약간 무질서하게 형성돼있는 높고 낮은 건물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파울루라는 도시일지 가늠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도시 규모에 놀라웠다. 그렇게 나는 비행 내내 지구 반대편은 너무 멀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앞으로 초장시간의 비행에는 결코 창가 쪽 자리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 브라질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