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이라는 단어에 대한 경계
브라질에 정착해 살게 된 지 3개월쯤 지나니 슈퍼마켓만 가도 무슨 말을 걸진 않을까 두려워했던 시간도 지나고 이제 점차 많은 것들이 익숙해져 갔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이제는 내 동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지리적, 심리적으로 익숙해졌기에 자유롭게 산책을 나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 이제 브라질이라는 낯선 나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적당히 경계는 유지한 채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그날은 업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회식 자리를 가진 날이었다. 사무실 근처 단골 식당에 모두 모여 하루의 소회를 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식적인 자리가 모두 끝난 후 못내 아쉬운 사람들이 남아 근처 동료 집으로 향했다. 그다음 날은 토요일이었기에 출근에 대한 부담 없이 우리는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새벽이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하다 새벽 3시쯤이 되었을 무렵에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파하기로 했다.
"그냥 여기서 자고 가요. 시간이 너무 늦었다. 가까워서 우버(Uber)타고 가기에도 애매하잖아요."
"에이 뭐 코 앞이라 뛰어가면 금방인데... 저도 이제 브라질 3개월 차입니다. 집에 자는 게 편하니까 걱정 마시고 그냥 갈게요."
"그래도 자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내가 묵고 있는 집은 그 동료 집에서 도보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위치에 있어 우버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너무나도 애매한 거리였다. 한국에서 이 정도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탑승한다면 분명 기사님이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어서였을까? 나는 동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냥 집에 걸어가기로 했다. 내가 3개월 동안 매일 출퇴근을 하던 아주 익숙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곳곳에 걸인 분들이 주무시고 계셔서 그 분위기가 결코 안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언정 위해를 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빠르게 뛰어가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조차가 없다고 생각했다.
뛰어서 5분 정도면 집 앞에 도착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것과 달리 동료의 아파트 철문이 닫히자마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길거리에는 듬성듬성 멀찍이 설치된 텅스텐 가로등들이 힘겹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고, 그 희미한 불빛 사이로 벌써부터 누워계시는 분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짓말 좀 보태서 어느 좀비 영화에 나올 듯한 밤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벨을 눌러 자고 간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 터라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올라온 취기에 힘을 빌려 용기 내 빠르게 걸었다.
1블럭...2블럭...3블럭...
마치 나는 좀비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다가오는 사람은 없는지 혹은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철저히 사주경계를 하며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세 블록 정도를 이동하며 길거리에 누워 계시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걸어 다니시는 걸인 분들을 3~4분 정도 마주쳤지만 그렇게 온 정신을 집중하며 온 결과 집에 거의 다 다달을 수 있었다.
에이 뭐야 역시 정신 차리고 오니까 뭐 별거 없네!
직선거리로 약 50m만 이동을 하면 바로 그 코너 모퉁이에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가 있었기에 나는 안심한 채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어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렇게 코너에 다다르기 일보 직전,
뒤에서 갑자기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누군가가 나의 몸을 덮친 후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낚아채려고 시도했다. 갑자기 달려오는 소리에 놀라 내가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려버렸기에 그 사람은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바로 채가지 못했다. 그렇게 핸드폰을 뺏고자 하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 간의 실랑이가 한참 이어졌다. 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는 내내 그에게 외쳤다.
Desculpa, Desculpa! (지스꾸우빠, 지스꾸우빠), Porque?(뽀르께?)
미안해요! 미안해요! 왜?
내가 읊조린 단어들의 의미는 '미안해요. 저한테 왜 그러세요. 정말 미안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정도였겠지만 처음 경험해 보는 긴박한 상황 속에 기본적인 포르투갈어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는 '미안하다'와 '왜'라는 표현만을 반복적으로 외쳤다. 아니 절규에 가까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분? 아니 30초? 한 세월이라고 느껴졌던 그 실랑이의 시간이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실랑이를 하는 도중 갑자기 그가 재킷 안주머니로 손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안주머니로 손을 가져가자마자 너무 깜짝 놀라 손을 놔버리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주먹으로 내 안면을 한 대 강타한 이후 핸드폰을 가지고 아주 빠르게 도망갔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가 안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정말 파노라마처럼 오만가지 생각이 겹치며 자동으로 손을 놓게 됐다.
나는 뒤쫓아갈 여력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기에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안전한 거리가 확보됐다고 생각했는지 뒤를 돌아 멀리서 나를 쳐다봤고, 그제야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깝진 않았지만 나는 마치 망원경으로 확대해서 보는 것처럼 그의 옷차림이나 표정 등이 생생하게 보였다. 내 예상과는 달리 말쑥한 차림이었던 그는 브라운 계열의 줄무늬 니트와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약을 할 것 같지도 그렇다고 험한 무기를 지니고 다닐 거 같지도 않았던 평범하디 평범한 외모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화가 난 건지, 억울한 건지, 속상한 건지 구별하기 어려운 표정과 함께 숨을 헐떡거리며 멀리서 나를 응시하다 어둠 속으로 황급히 사라졌다.
집에 들어와 떨리는 손과 발을 진정시키려 해 봤지만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좀처럼 쉽게 진정되지가 않았다. 언어가 되지 않아 신고를 할 수도 없었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허공을 바라보며 그저 멍하게 앉아있는 것 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몰려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내 동네라며 자신을 떨었던 내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해당 사실을 알린 후 동료들은 먼저 내가 당한 일에 위로를 전했지만 그 이후 나의 행동과 대처에 대해서는 나무랐다. 먼저 아무리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에 도보로 이동을 한 것에 대해 나무라며 설사 그런 경우를 또 맞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우발적인 상황에서 범죄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혹여 상해라도 입었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는 무조건 다 주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를 했다.
진짜 안주머니에서 칼이라도 꺼내는 거였다고 생각해 봐요.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서 줘 그냥. 안 다치는 게 제일 좋으니까.
브라질살이 3개월 차, 나는 그렇게 호되게 브라질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나는 이 끔찍했던 경험을 곱씹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 기억에는 그의 얼굴과 표정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나는 범죄에 성공한 후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지었던 그의 표정이 무슨 의미였을까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내가 봤던 그의 표정은 기쁨이나 안도 혹은 분노 등이 아니라, 마치 자신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가 지어 보인 표정이 당혹스러운 표정이 맞다면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길거리에서 누가 봐도 취기가 올라있는 사람이 핸드폰만 바라보며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 유혹을 느꼈고,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나 또한 살아가며 옳지 않은 행동인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혹의 순간을 마주한 경험들이 적지 않다. 아마 모두가 그런 상황들을 경험해 봤을 것이고 앞으로 수십 번 수만 번 또 마주하게 될 경험일 것이다. 그 상황 자체를 마주하지 않을 방법은 없기에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내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만한 분명한 삶의 태도와 잣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자주 여행을 다니고 익숙한 곳일지라도 타지에서는 겸손할 것…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나의 이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나도 나의 무지한 행동에 대해 인정을 하는 바이나, 의외로 나 말고도 많은 여행객들이 애매한 거리를 늦은 시간 도보로 이동하다 소매치기를 당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이는 내가 브라질이라는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견지해야할 당연한 자세이다. 이런 당연한 자세를 굳이 경험을 해야 배우는 나같은 분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