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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버들 Dec 24. 2022

나보다도 한참 어린것이

 설거지를 하는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샬 스피커에서는 바흐의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는데,  마음속에서는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쏟아져내리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꿈틀 솟아올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것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상하다.

 집에서 혼자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40여 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의  토막이 선연히 떠올라 가슴을 벌렁 거리게 만들었는지 도통  이유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세월이 흘러 장모와 시어미가 되고 보니  역할에 맞는 대접을 받고 싶다는 속마음이 나도 모르게 표출된 것인지도 모를 .


한참 세월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다.

 나이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들어 결혼을 했다.  시절에는 그리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나이에  결혼이다.

직장이 강원도 깊고 깊은 산골짜기, 민통선과 접한 작은 마을에 있어 결혼을 하고는 곧장 주말 부부신세 되었다.

토요일만 되면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곧장 시골 버스를 타고 읍내로 와야지만 도시로 나오는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실을  있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약 4시간 30여 분이 지나 도심의 불빛이 보이는 높은 산꼭대기 고갯길에 들어서면, 비로소  살던 고향과 내가 몸을 편안히 뉘일   방이 기다리고 있다는 안도감에 일주일간 쌓인 피로와 버스에 시달려 지친 몸에 생기가 았다.

또 시내에 도착해서도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시댁으로 돌아오면 저녁 밥때가 되는 어둑한 시각.

커다란 가방을 일주일 내내 비어있던   칸에 들여놓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몸을 씻고 휴식을 취한다? 아니 손을 대충 씻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일주일 내내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고대했던 나를 기다려주는 것은 시어머니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부엌데기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일주일 내내 시골에서 힘들게 근무를 하다 돌아온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저녁 짓는 일을 시켜야만 했을까?

또 나는 숨도 돌리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 짓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그렇게 버스를  번이나 갈아타고 4시간 30   거리를 돌아온 며느리인 나는, 어설픈 솜씨로 연탄불에 밥을 짓고, 곤로 위에다 찌개를 끓여 저녁을 지었다.

이것 까지는 그렇다 치자.

일하는 며느리에게 일주일 동안 밀린 밥상   받아 보고 싶은 시어머니 마음을 백번이라도 이해해 줄 수 있다고 너그러운 마음을 지녀보자.


 동그란 양은 밥상에 상을 차려 들고 부엌 문턱을 넘어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가 밥상을 내려놓은 후 방문을  저녁 밥상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선다.

추운 겨울, 안방 아랫묵에 커다란 빨간 장미들이 활짝 피어난 밍크 담요를 무릎에 덮고 있던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겨우 담요에서 몸을 일으켜 밥상 앞에 앉았다.

시어머니는 당시 유행했던  월남치마를 휘두르 입고는 나른한 표정으로 저녁을 먹었다. 뭔가 흡족하지 않은 표정으로 찌개의 맛을 보며   수저...

그리고 나보다  살이나 많은 시누이도 당연한  시어머니 옆에서 나를 윗목에 앉혀 놓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는 에휴!! 뭔가 사뭇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밥상을 물리고는 두 다리를 다시 밍크 담요에 묻으며

숭늉  온나.’  마디 했다.  먹었다도 아니고 숭늉  온나.

밥상을 부엌으로 내 오고 숭늉 한 그릇을 부엌과 연결된 쪽문으로 들이밀어 놓은 후에 설거지를 한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밍크 담요 안에 두 다리를 묻고는 숭늉을 나눠 마신 빈 그릇을 쪽문으로 내놓았다.

여기까지는 별스럽지 않은  당시의 평범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얘기다.

그 당시의 며느리였던 나는 이 모습에 별 이상 반응도 보이지 않았었고, 일말의 반감도 갖지 않은 채 주말이면 되풀이되는 의례 일과로 당연시 여겼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내가 60 지나 시어미가 어 있다는 거다.

시어미가 되기 전부터 시어미 노릇을  생각추호도 없었고, 시어미로 대접받 것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은 신세대 신시어미로 생활하고 있다 혼자 생각한다. 당연히 혼자생각이다. -며느리는 이 시어미인 나에 대해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에 -

그런데 설거지를 하다 불현듯 떠오른 내 이십 대의 시어머니.


 당시 아랫목에서 밍크 담요를 무릎에 덮고 앉아 내가 차린 밥상을 받던 시어머니 나이를 헤아려보니 50 초반으로 가늠이 되었다.

18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시어머니는 마흔 반에  며느리를 보고는 내가 둘째 며느리가 되었으니 젊디 젊은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의료 시설과 영양 상태, 운동 상태에 따라 사람의 늙음에 천차만별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50 초반의 젊은 시어머니가 월남치마를 길게 받쳐 입고는 밍크 담요를 덮은 아랫 앉아, 강원도 오지에서 일주일 내내 일을 하고 돌아온 며느리에게  밥상을 받아야 했던 말인가?

일주일  며느리의 부재를 보상받고 싶었던 것인지,  옆에  앉아 밥상을 받았던 시누이도 같은 이십 대 직장인이면서 시누이 노릇이 하고 싶었던 것인지.


 마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가 집안을 평화롭게 가득 채운 평화로운 아침에,

설거지를 하다 말고 갑자기 시골에서  돌아와 숨도  돌리고 저녁밥을 지어 안방에 들여놓던  이십 대의 모습과,

아랫 앉아 밍크 담요를 거둬내며 저녁밥상을 받아먹고 숭늉을 올리라던 나보다 한참 나이 어린 과거의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나보다 훨씬 나이도 어린것이 아랫 앉아서 내가 차린 밥상을 받아먹었단 말이야!!’


 괜히 설거지통의 그릇 벅벅 씻어 대며 화풀이를 했냈다.

 내 이십 대의 지난날, 아무리 힘들어도 착한 며느리가 되어 인정을 받고 어 했던 멍청한 나 자신을 향한 울화통이 불현듯 터져 나와 가슴속에 도돌이표로 표기되어 있었나 보다.

내가 막상 시어미가 고 신세대 시어미가 되겠다고 큰소리쳤다지만 제대로 시어미 노릇도, 시어미 대접이 마뜩잖은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가슴속 깊이 똬리 틀고 있다 그 똬리가 풀어져 갑자기 설거지 통속에 뒹구는 그릇들과 함께 쏟아져 나왔나 보다.


나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것이 정말 괘씸하네!’

휴우~~이렇게 내뱉고 보니 속이 시원하다.

나는 한때 젊었었고, 며느리였고. 직장인이었고, 애기엄마였다.

나는 지금 나이 먹었고, 엄마이고, 시어미고, 장모이고, 외할머니고, 친할머니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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