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수단, 목적지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누군가는 나를 은근히 경쟁 상대로 여겼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저 사람을 반드시 이겨야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1학년 시절,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시험을 보면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고,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한 성적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와 비슷한 성적을 가진 동급생들과 묘한 동질감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성적이 비슷하다고 저절로 라이벌 의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벌 관계는 단순히 성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일정한 친밀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반에서 따돌림과 공공연한 무시를 받을 정도로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비슷한 레벨’에 있다는 감각조차 갖기 어려웠다.
중학교 2학년 무렵, 갑자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성적은 눈에 띄게 상승했고, 중3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친구도 거의 없고,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가 갑자기 높은 성적을 받으니,
다른 반 학생들이 놀라서 구경 올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는 오히려 라이벌이 더더욱 사라졌다.
폭발하듯 오른 성적은 내 주변을 텅 비워버렸다.
친구도 없고, 주위에 나와 성적이 비슷한 사람도 없으니, 경쟁이라는 것도 성립되지 않았다.
공부 잘하는 그룹에서는 이미 서로 친한 애들끼리 묶여 있었고,
나는 그 안에 끼지도 못한 채 애매한 존재로 남았다.
성적 덕분에 누군가와 가까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고립되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늘 최상위권이었고, 주변에도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론적으로는 그들과 치열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함께 웃고 떠들며 지내다 보니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가 되었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순간, 라이벌 관계는 성립되지 않았다.
경쟁심 대신 응원의 마음이 먼저 앞섰다. 서로를 응원하는데 어떻게 견제가 될까.
이후 포항공대, 연세대학교 치의학 전문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기본적으로 시험기간만 되면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무언가 한 마디씩 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 공부 아예 못 했어.”
“이번엔 진짜 망했어.”
공부를 덜했고, 시험을 망쳤다는 것을 마치 자랑처럼 내뱉는다.
그 말의 속내는 무엇일까. 나는 세 가지로 해석했다.
1. 적게 공부하고도 성적을 잘 받으면 천재임을 증명할 수 있음.
2. 상대방이 공부를 덜 했다고 믿게 만들어, 방심하게 하려는 심리적 전술.
3. 열심히 공부하고도 성적이 안 나오면 바보 취급받을까 두려워서 미리 방어하는 것.
어느 쪽이든 본질은 견제다.
같은 시험을 치르고, 제한된 학점을 두고 경쟁하는 이상, 견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 견제는 성적이 높아질수록, 합격 TO가 정해진 시험일수록 더 치열해진다.
과실이 귀해질수록, 경쟁이 무거워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견제를 주고받지 않으려 했다.
그동안 견제라는 걸 해본 적도 없고, 사람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많이 공부할 때는 많이 하는 모습을, 덜 할 때는 덜 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렇게 하니 나는 '그 위치에 항상 있는 눈에 훤히 보이는 고정된 존재'처럼 여겨졌고,
나를 굳이 견제할 이유가 사라졌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견제를 멈추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애써 대응하지 않고 그냥 무시했다.
종종 어떤 이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렇게 말한 사람 중에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공부가 늘 어렵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일정 수준에 이르면 공부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동급생을 반드시 성적으로 이겨야 내가 그 과실을 차지할 수 있는 싸움인 것이다.
결국 '공부가 쉬웠다'는 말은 옆의 경쟁자가 약했거나 목표가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옳다'는 분위기에도 의문을 가진다.
결국 공부는 개인이 자기 성공을 위해 하는 일이고, 제한된 자원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다.
그 과정에서 누구든 이기적인 행동이 자연스럽게 툭 튀어나오게 된다.
성인이 되어 성공을 향해 이기적으로 달리는 것은 비난하면서,
학생일 때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칭찬하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공부가 경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경쟁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공부가 끝나도 남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고,
그래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나는 치과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만나며 그 점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
공부가 끝이 아니고, 성적이 끝이 아니다. 합격만으로는 삶이 채워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시험 점수와 성적표로는 측정되지 않는 삶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학적 귀납법처럼, 그제와 어제가 인간적이었다면 오늘과 내일도 인간적일 수 있을 것이다.
공부는 수단일 뿐,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인간적인 삶이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9
스케일링 관련
1. 연 1회 스케일링으로 하죠.
- 1년에 1번씩 건강보험으로 적용되는 스케일링을 할 수 있는데, 그걸 써먹자는 말이다. 무료는 아니다.
2. 잇몸치료 or 큐렛까지 하는 걸로 할게요.
- 마취한 후에 잇몸 아래에 있는 치석이나 염증을 긁어내는 과정까지 하자는 말이다.
스케일링 후 다른 날에 몇 번 나눠서 해야 건강보험 적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