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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났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회 구조가 만든 결혼의 딜레마>

by 무명치의

나는 지금의 능력과 성격을 그대로 지닌 채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지 가끔 상상해 본다.

직업은 지금과 같았을 것이고, 외모나 삶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완전히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결혼 여부다.

나는 내가 여자라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많은 여성들이 키 큰 남성을 선호한다.

작은 키의 여성은 자신이 작아서 키 큰 남자를 찾는다고 하고

큰 키의 여성은 자신보다 더 큰 상대를 원해서 키 큰 남자를 찾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했다.

특히 내가 키가 작은 편이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면 괜히 마음이 긁혔다.


하지만 내가 여성이라고 상상해 보니 조금 이해가 갔다.

내가 가진 남자의 본능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본능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여자라면, 분명 나 역시 키 큰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았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고려한다면, 능력 또한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생활이 원활히 유지되려면 서로의 경제적, 정서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조선시대 천재 허난설헌이 무능력한 남편과의 갈등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능력 있는 아내에게 남편이 열등감을 느낀다면, 이는 결혼 생활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딜레마가 생긴다.

키가 크고 능력까지 갖춘 남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키와 능력이 별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둘 사이에는 꽤 확실한 음의 상관관계가 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그건 우리 사회가 지식 중심의 사회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 수렵 사회였다면, 키가 크고 신체가 좋다는 건 곧 능력이라는 뜻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좋은 대학에 가야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다.

그러려면 초중고 시절을 공부에 쏟아야 하는데, 그건 곧 성장기의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학창 시절 늘 키가 작았다.

2월생이라 초등학교를 남들보다 일찍 들어가서, 어릴 때부터 반에서 항상 키가 작은 편이었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더 이상 성장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자리를 정할 때는 늘 맨 앞자리를 도맡았다.

'작다'는 말은 10대 시절 내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포항공대에 입학하자 내 키가 평균이 된 것이다.

정말 몇 명 특출 나게 큰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나와 비슷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외모와 분위기, 패션까지 어쩐지 닮아 있었다.

본인들은 강하게 부정했겠지만, 다들 이마에 '포항공대생'이라고 써놓은 것 같았다.

그때의 안도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동안 키 큰 백조들 사이에서 힘겹게 살아오다,

드디어 못생긴 오리 무리 속에 들어간 '미운 백조 새끼'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처음으로 '내 영역'의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아마 과학고에 갔다면 고등학교 때 이미 느꼈을 감정일 것이다.

실제로 한 번은 새벽에 실험을 마치고 나올 때,

대구 출신 후배가 "와따, 다 고만고만하노" 라며 웃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정말 그랬다. 남학생들 키는 170 초반정도였고 분위기도 비슷했다.

아마 그 친구들 모두 졸업 후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을 것이다.




키와 관련해 씁쓸한 기억도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전교 1등을 했을 때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1등을 하니, 다른 반 학생들이 구경 오듯 나를 보러 왔다.

그때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했던 말이 아직 생각난다.

"와, 키 작은 저런 애가 1등이라고..."

키와 외모가 성취보다 먼저 평가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잔인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 여학생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능력 있는 남자를 찾는다면,

결국 자신들이 예전에 놀렸던 바로 그 ‘키 작은 저런 애’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외모로 좋은 경험이 없다.

그래서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치아 교정을 해서 예전보다 외모가 확실히 나아졌고, 늘 배가 안 나오도록 다이어트와 운동을 꾸준히 한다.

또한 주기적으로 피부 시술도 받는다.

하지만 키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늘 감사하다.

아내는 나의 키 대신, 나의 눈빛과 눈썹, 그리고 남자다운 인상을 좋아한다고 했다.

살면서 엄마 말고는 잘생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내가 그렇게 말해주는 건 내게 큰 의미가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외모를 사랑해 주는 여성이 있다는 건,

내가 남자로서 살아가는 데 자존감을 지켜주는 아주 소중한 사실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내가 여자라면?

아마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능력 있는 남자를 찾기도 어렵고, 그와 동시에 키 큰 남자를 원한다면

선택지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의 행복은 이상형을 찾아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키 작은 능력남'을 계속 양산하고 있다.

그게 지식 중심 사회의 구조적 결과다.

그래서 '능력 있고 키 큰 남자가 없다'는 여성분들의 고민은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


이 글은 특정 성별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 개인의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조건과 구조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키와 능력, 이상형과 현실 사이에서 누구든 쉽지 않은 선택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남자든 여자든 조건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10


발치 관련 1

1. 잘 안 나오네요. 뿌리가 딱딱하게 굳었네요.

- 이를 빼는데 뿌리가 뼈에 바짝 붙은 상태(유착)로 굳어서 안 나온다는 뜻이다.

2. 오래 걸리겠네요.

- 환자는 각오하라는 뜻이다.

3. 난발치로 준비해 주세요. or 수술로 뺄 께요.

- 사실상 1,2와 같은 말이다.

4. 치주 발치니깐 포셉만 준비해 주세요.

- 흔들리는 치아라 뺀치로 잡고 뽑겠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모양의 포셉, 환자들은 뺀치라고 부름. 종류는 수십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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