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꽃이 지나간 자리>
어릴 때 읽던 위인전에는 대부분 이런 대목이 빠지지 않았다.
네 살에 천자문을 마치고, 여섯 살에 사서삼경을 떼며,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는 전형적인 패턴 말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 전설은 현대 버전으로 진화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수1을 떼고, 고학년 때 미적분을 끝냈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수학에서 몇 번이나 '벽'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분수의 사칙연산에서 막혔고,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에서 막혔고, 미지수 계산에서도 막혔다.
그리고 그 벽을 어떻게 넘었는지도 기억한다.
분수의 사칙연산은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풀렸고,
미지수는 숫자를 하나하나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방정식의 개념으로 풀린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비밀은 특별한 교육도 수학 과외도 아니었고, 단지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생일이 2월생이라 빠르게 학교에 들어가 동기들 중 가장 어렸고,
키도 머리가 하나 작을 정도로, 발달이 느렸다.
뇌 발달이 그 나이에 배우는 수학 개념을 이해하기에 늦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방금 이야기했듯이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동네에서는 그저 통통하고 귀여운 '몽돌이'로 불렸다.
반면 어릴 때 천재라 소문난 동네 형, 누나들이 하나둘 대입에서 고배를 마시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결국 대입에서 성과를 낸 건 한 번도 천재라 불리지 않은 '동네 귀여움 담당'인 나였다.
TV에 나오는 어린 천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부모들은 천재인 우리 아이를 나라에서 키워 줘야 한다며 호들갑을 떤다.
근데 몇 년 후엔 감감무소식이다.
그 이유를 나라에서 제대로 지원해 주지 않아
아이의 천재성을 제대로 일깨우지 못해 그렇다고 생각하려나 싶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진짜 천재라면 공교육 안에서도 자라나야 한다.
교육 환경이 좋을 때만 꽃을 피운다면 그건 순수한 재능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다.
진짜라면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기 힘으로 결과물을 내야 한다.
사실 대한민국 공교육이 무시할 만한 수준도 아니다.
나는 그들처럼 천재로 불리지도 않았지만, 비학군지 평준화 일반고의 공교육으로 결과를 냈다.
그들이 20대가 될 때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걸 보면,
그들은 부모의 주장과 달리 천재가 아닌 단지 머리가 빨리 발달한 '조숙아'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조숙함과 성실함의 교집합은 잠깐의 기간 동안 아이를 천재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린 천재임을 증명하는 과목 중에 하나인 미적분도 괜히 이름이 멋있어서 난이도가 과대평가될 뿐,
본질적으로는 단지 계산법일 뿐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커리큘럼을 성실하게 잘 따라가면,
고등학교 수준의 미적분과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진짜 천재들은 매스컴에 나와서 천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대치동에서 조용히 사교육을 받거나, 독서실에서 조용히 인강을 들으면서 자라고 있으며,
30대 이후엔 압구정, 청담, 논현 일대에서 본인 병원 유튜브 홍보 및 강남 사모님들 울쎄라 시술을 하느라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건 농담)
대한민국은 '어린 나이의 천재', '어린 시절의 빨리 하기'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무언가를 빠르게 해낸다면, 훗날 더 큰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절대 그런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익히는 능력과 더 큰 무언가를 완성하는 능력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진로를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너무 어린 나이에 '빠르게 커리어를 완성해서, 빠르게 성공을 해 보이겠다'라는 다짐은
오히려 성급한 마무리를 부르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마음 가짐보다는 '내 인생에서 한 번 해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이나
'잘 모르니 이것저것 해보자'하는 태도가
오히려 오랫동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더 큰 결과물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렇게 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어떻게 하나 이런 게 참 걱정이다.
하지만 결과는 투수가 공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해서 꽉 찬 스트라이크일 수 있고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해서 스트라이크를 던졌는데, 홈런, 안타를 맞을 수도 있고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해서 스트라이크를 던졌는데, 맞고 파울이라서 한 번 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해서 스트라이크를 던졌는데, 크게 맞았지만 플라이 아웃일 수도 있고.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했지만 볼이 될 수도 있고.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했지만 볼이었는데, 운 좋게 땅볼이나 뜬 공으로 아웃을 잡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본인의 의도한 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결과는 카오스의 영역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직업과는 별개로, 인생을 '풍요롭게'가 아니라 '풍부하게' 사는 게 더 좋다고 믿는다.
마음의 결은 느슨하게, 삶은 다양하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인생 운영법이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8
잇몸 관련
1. I&D(아이앤디) 할게요.
- 잇몸에 고름이 꽉 차서 마취 후 잇몸을 짼 다음 고름을 빼내겠다는 뜻이다.
2. 잇몸에 염증이 심해요.
- 잇몸이 부어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3. 잇몸에 염증이 심해서, 잇몸 뼈가 다 녹았어요.
- 이를 빼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