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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 출신이고, 삼성동이 본가입니다

<은평구 신사동 출신이고, 고양시 삼송동이 본가입니다>

by 무명치의

나는 유부남이지만 가끔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상상을 한다.

특히,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자기소개 시간.


"저는 신사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와~~

"아, 은평구 신사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웅성웅성


"본가는 삼성동입니다."

와~~~

"발음이 잘못됐네요. 고양시 삼송동입니다."

웅성웅성


"직업은 치과의사입니다."

와~~~

"현재 읍면지역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웅성웅성


그리고 자기소개가 끝나면, 아무에게도 간택을 받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와 혼자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제작진에게 “간짜장은 안 되나요?”라고 물으며,

요새는 가짜 간짜장 밖에 없다고 한탄하는 장면까지 그려본다.




웃자고 하는 상상이지만, 사실 이런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집이 어디냐’‘직업이 무엇이냐’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만으로, 사람들은 내 삶을 상당 부분 가늠해 버린다.


집은 더 이상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라는 의미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간판에 가까워졌다.

직업 역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는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는지를 가늠하는 수단이 됐다.

이런 기준 속에서 살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대화와 만남이 시험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소개할 때, 나라는 사람 대신에 나에 대한 정보를 말한다.

나는 이제 내가 아니라, 정보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실제 고향은 은평구 신사동이지만,

가끔 꺼내 쓰는 치트키 같은 상상에서 나의 고향은 미국 뉴욕이다.


상상 속에서, 나는 원래 '뉴욕 출신’이라는 설정을 한다.

이 설정에서 나는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우연히 한국에 출장 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큰일이 생기든, 복잡하게 꼬이든 상관없어진다.


"어차피 뭐, 크게 잘못돼도 뉴욕으로 돌아가면 되니깐 괜찮아!"

이 한마디만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마음의 부담감을 좀 내려놓으면, 신기하게도 잘 안 풀리던 일도 어느 정도 풀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뉴욕에 가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그 거리를 실제 걸어 다니게 되면,

내 머릿속의 ‘내 고향 뉴욕' 설정이 깨져버릴까 봐, 은퇴 전까지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한국에서의 집은 스펙이 되어버려서,

가본 적도 없는 뉴욕에서의 집이 나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식처 역할을 해준다.




그리고 '나는 솔로', '내 고향 뉴욕'이라는 상상을 합쳐본다.


"저는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와~~~

"위에 말한 건 상상이고요, 실제론 은평구 신사동에서 태어났습니다."


→ 바로 쫓겨남.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7


치과 치료 중

1. 충치가 깊어요. or 엔도 가능성 있어요.

- 충치가 신경까지 도달했거나 근처까지 있어서, 근관치료(환자들이 아는 건 신경치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일단 치료는 진행하되, 나중에 시리거나 통증 같은 게 있으면, 앞으로 치료를 더 해야 할 수 있다고 환자분께 고지 및 양해를 구해달라는 말이다.

2. 발치 가능성 있어요.

- 일단 치료는 해보되, 치료 중간이나 치료 끝나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이를 빼야 할 수 있다는 걸 환자분께 고지 및 양해를 구해달라는 말이다.

윙~ 소리와 함께 충치를 제거하는 Handpiece // KAVO(독일산), NSK(일본산)가 전 세계를 양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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