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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Jun 05. 2024

시골 장날엔 있어야 할 게 없다

그래도 장은 열린다

오늘은 장날이다. 읍내 중심가에는 국경일처럼 어김없이 5일마다 장이 선다. 차도 양옆 인도 위에도 빼곡하게 좌판이 펼쳐진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파라솔도 길게 늘어선다.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펼쳐 놓고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다.


인구가 지금보다 4배나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장날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이었다. 화려했던 영화를 보여 주듯 큰 규모의 장터는 아직 그대로다. 번성했던 시장의 모습은 빠른 인구감소로 옛 추억 속에만 자리하고 있다. 5일 장의 주도권도 옆 고을로 넘어가 장이 서는 날도 바뀌었다. 지역의 연로하신 분들은 여전히 북적거리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신다. 세월의 무게로 쇠락해 가는 몸처럼  남아 있는 장터도 쓸쓸하고 적막해 보인다.  


정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 사업으로 시장의 모습은 현대화되었지만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새롭지 않다. 예산을 쏟아부은 만큼 떠난 사람이나 새로운 사람이 시장을 찾아오지는 않는다. 인근 지역 장꾼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새로울 게 없는 시장에 사람이 오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다. 편리하고 쾌적한 곳에서 얼마든지 즐겁게 쇼핑할 수 있는 데 굳이 뙤약볕 아래를 오가며 물건을 찾고 흥정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세월은 자연스레 많은 변화를 불러온다. 사람은 늙고 건물은 낡아 하나둘씩 허물어졌다. 지역 곳곳을 가득 메웠던 많은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갔다.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린 사람들,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사람들, 돌아올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무수한 사람들은 썰렁한 시장 분위기와 함께 먼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텅 빈 시장엔 장 보러 나온 사람보다 물건 파는 사람들이 더 많다


시장 곳곳의 점포는 거의 문을 닫았다.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게는 찾는 이 없어도 일찍 문을 연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상인의 습성은 의식처럼 새벽을 맞이한다. 매일을 하루처럼 물건을 가지런히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좀처럼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몸보다 마음을 지치게 한다. 일부러 과거는 잊는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를 살기 위함이다. 아직 시장은 열리고 물건은 있다. 서로를 위로하며 힘겹게 살아내는 날들이다.


점포와 별개로 좌판에서 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주섬주섬 챙겨 놓은 물건들을 양손 가득 바리바리 짊어지고 새벽 버스에 오른다. 조금 일찍 온다고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순 없다. 어느 누구도 오랜 된 시장의 질서를 무너 뜨리지 못한다. 일찍 서둘러 나와야 되는 장돌뱅이의 숙명이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 뿐이다. 발걸음을 겅중겅중 옮겨 무언의 약속인 곳에 좌판을 펼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좌판대 위에 물건들을 펼쳐 보니 고만고만하다. 등이 굽고 손가락이 굵은 할머니가 시장 좌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계신다. 그분들은 생생하게 시장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속도 모르고 오뉴월 햇볕은 이글이글 타오른다. 무심한 행인들은 허겁지겁 제 갈 길 바쁘다. 오가는 이는 드물고 소중한 물건들은 타는 마음 따라 시들시들해져 간다.


아직 점심 전이다. 더 시들기 전에 서둘러 팔아야 한다. 마음은 급해져도 허기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몇몇이 모여 앉아 주문한 점심을 먹는다. 식곤증이 몰려와 노곤노곤하다. 야속한 세월 탓은 하지 않는다. 세상살이 시장 바닥에서 거침없이 살아냈다. 서로 함께 토닥이며 흘러왔다.


찾는 이 없어도 지켜야 하는 사명이 점포와 좌판을 채운다. 조그만 시골의 장날은 무언의 약속으로 열리며 닫히고 다시 열린다. 사람은 가고 읍내는 텅 비어도 사라지지 말아야 할 역사의 현장으로 시골장터는 남아 있어야 한다.

시골 장날엔 우리들 삶의 근원이 있다. 아직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땀과 눈물과 삶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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