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래야 할 때>
조금만 일해도 금방 지친다. 거친 숨을 내쉬고 땀을 비 오듯 흘린다. 더위 탓만은 아니다. 온몸의 근육이 작동을 멈춘 듯 힘을 잃는다. 조금 무리하면 다양한 통증이 찾아온다. 그 통증이 강제로 일을 멈추게 한다. 노동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애써 받아들여야 함을 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멈춤의 순간을 선택한다. 오늘도 집 주위에 풀을 베다가 적당히 마무리했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순응하는 삶을 살겠다는 약속이다. 노동의 강도를 떠나 농부는 기본적으로 온몸을 사용하여 경제 활동을 한다. 기계화와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원초적인 방법으로 삶을 영위한다. 모든 것을 직접 작동하고 조정하는 작업부터 손과 발을 가만히 둘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자연스레 마음과 달리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무시로 체득한다. 아무 잘 못 없는 세월 탓은 가장 어리석고 부질없는 노릇이다. 세월에 먼저 고개 숙이고 겸손해지는 게 순리다.
요즘 부쩍 노련하고 부지런한 농부들의 사고 소식이 잦다. 몇십 년을 무리 없이 일했던 분들이다. 눈을 감고도 그 기능과 성능, 운전법을 알고 있는 기계로 인해 속절없이 다치고 무너진다.
기계의 힘은 갈수록 증폭되는 데 농부의 힘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 경력이 쌓이고 지혜가 깊어져도 해야 할 일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덩달아 마음만 급해진다. 몸에 무리가 따르고 과부하가 걸린다. 그럴 때 사고가 발생한다. 가만히 세월 따라 농부의 길을 가도 몸은 여기저기 망가진다. 예기치 못한 부상을 당하면 삶은 더 고달파지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는다.
누구도 시간을 멈추게 하거나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단순한 진리를 애써 거스르며 살아갈 뿐이다.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몸은 쇠락해 가지만 마음은 안간힘을 다해 이겨내려 한다.
안타깝지만 정신력으로 육체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만용을 부려서는 안 된다.
스스로 주문을 외운다.
"현명해져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 덜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욕심부리지 말고 겸손해져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읊조리며 일터로 향한다. 그래야 몸과 마음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다.
이젠 해야 할 일의 양을 정해놓고 매달리지 않기로 한다. 시간을 정해 놓고 적당히 일하는 걸 원칙으로 세운다. 일정한 양이나 면적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다. 힘쓰는 일은 하루 삼십 분, 한 시간 단위로 시간을 채우면 끝낸다.
오늘 할 일을 다하지 못해도 연연해하지 않는 마음, 오늘 못다 한 일은 내일, 또 내일 해도 된다는 마음, 그래도 못하면 못한 대로 그냥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려 노력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된다는 속박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은 이제 그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여유와 멈춤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 속으로 힘차게 들어간다.
오래된 농부는 그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