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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형!

호형호제하는 사이

by 최담

대수 형은 오늘도 마을 어귀에 나와 있다.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대수 형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년 365일 변함없는 모습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대수 형은 그대로다.


대수 형의 하루는 언제 시작되는지 알 수 없다. 해뜨기 전에 나가도 있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나가도 있다. 언제부터 나오게 됐는지, 왜 나와 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구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어릴 적, 옆 마을에도 대수 형 같은 분이 계셨다. 그분도 늘 한곳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근처 경조사에는 빠짐없이 등장 했다. 어린 나이에도 신기한 일이었다. 마주할 때 마다 가볍게 인사하면 순박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대수형은 거의 말이 없다. 할 수 있는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는다. 주로 손짓과 표정으로 말한다. 하루 종일 일정한 곳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는 대수형의 삶은 단순함의 극치다. 가끔 집에 있는 쓰레기를 들고나오거나, 수레로 끌고 나와 정확하게 버리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과다.


오가는 길에 대수형을 보면 큰 소리로 인사했다. 상황에 따라 인사의 내용은 달랐다. 그럴 때마다 대수형은 같은 말로 응답했다. 물론 자세한 발음은 아니지만 활짝 웃는 얼굴에 위아래로 손짓하는 모습은 애써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하려 함을 알 수 있다. 대수형의 진짜 나이는 모른다. 나와 비슷한데 내가 먼저 "대수 형"하고 부르면 대수형도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대수형은 내가 운전하는 차를 정확히 알고 있다. 멀리서도 차가 보이면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시한다. 어쩌다 바쁠 데 그냥 지나치면 따라올 듯 손짓한다. 읍내에서 간식을 사 올 때면 대수형의 몫도 준비한다. 빵이나 음료수를 건네면 그날 가장 밝은 웃음으로 고맙다는 마음의 표현을 아낌없이 내비친다.

어두운 밤에는 야광 조끼를 입고 나와 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올 때도 그 자리에 있는 대수형을 보며 계속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싶어 "형, 이제 얼른 들어가"라고 하면 역시 반갑게 응대한다.

문득 대수형이 마을에서 가장 반가워하는 사람이 나란 걸 알게 됐다.


대수형의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신데도 마을에서 가장 유머가 넘치는 분이셨다. 선천적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사시면서도 늘 밝은 웃음과 즐거운 이야기로 분위기를 이끄셨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하셨다. 그렇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대수 형 어머니는 대도시의 요양원으로 모셔졌다.

어머니의 부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수형의 하루 일과는 여전히 그대로다.


대수형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늘 일정한 곳에 서있다. 대수형은 가로등 같은 사람이다. 어두운 밤길에도 자신의 존재를 보여준다. 대수형은 지극히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해 준 만큼 표현하고 응답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도 대수롭지 않은 대수 형은 날이 밝아 오면 마을 어귀로 나온다.


그런 대수형이 요즘은 가끔씩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대수 형이 문득 불편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늘 그 자리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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