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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의 불청객들

얄밉지만 현명한 대처를

by 최담

농장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아늑하고 조용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이나 도로에서는 농장이 보이지 않지만 농장에서는 멀리 들판과 군청 및 읍내가 보인다.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스레 산 짐승과 들 짐승들의 방문이 잦다.


대표적으로 고라니와 멧돼지가 자주 출몰한다.

고라니는 초식동물이고 겁이 많다. 주로 혼자 다니며 새벽이나 해 질 녘에 활동을 많이 한다. 산에는 먹을 게 없다 보니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마을은 물론 들판에까지 나타난다. 자연스레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몇 해 전 밭에 심은 뽕나무 잎을 모두 따 먹어 결국 나무를 뽑아냈다. 고라니는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종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 많이 살고 있다. 사람의 인기척이 나거나 눈에 띄면 엄청난 스피드로 도망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빠르다. 밤이 되면 괴상한 울음소리를 낸다. 처음 듣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골의 밤길에는 특히 고라니를 조심해야 한다. 밤에 갑자기 도로 위에 나타난 고라니는 차량 불빛을 보면 그대로 멈추거나 달려온다. 로드킬도 당하고 피하려다 큰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멧돼지다. 농장에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멧돼지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생김새만 봐도 만만치 않다. 마주치면 멈칫할 수밖에 없다. 몇 번 마주쳤는데 다행히 멧돼지가 먼저 도망갔다. 멧돼지는 얄밉고 교활하다. 정원을 만들기 위해 곱게 갈아 놓은 땅을 완전히 헤집어 놓았다. 무리들이 한꺼번에 내려와 운동회를 한 게 틀림없다.

멧돼지들은 주변의 허술한 곳을 찾아 교묘하게 침입한다. 침입을 막기 위해 밤새 음악을 틀어 놓았다. 처음엔 효과가 있었으나 기계음인 줄 금방 알아채고 아무렇지 않은 듯 들어왔다. 소리와 불빛이 나오는 봉을 준비해서 꽂아 놓아도 소용없다. 며칠을 탐색하다 위협적이지 않은 걸 알면 거침없이 내려온다. 지자체에서는 공식적으로 엽사를 통해 신고된 지역의 멧돼지를 사냥하도록 하고 있지만 영리한 멧돼지를 소탕하기는 쉽지 않다. 멧돼지는 사냥개보다 더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다. 지능도 뛰어나 당해 내기가 쉽지 않다.

멧돼지는 농장물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특히 고구마 밭은 멧돼지들에겐 표적이다. 산 밑에 있는 논도 마찬가지다. 물을 좋아해 모를 심어 놓은 논에 들어와 한바탕 신나게 목욕을 하고 달아난다. 질퍽질퍽한 논은 멧돼지들에겐 최고의 수영장이다.

멧돼지 출몰을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먹을게 줄어들면서 점점 사람 가까이 내려온다. 탱자나무를 심을까? 방부목으로 울타리를 두를까? 철망으로 된 울타리를 칠까? 몇 가지 방법을 놓고 숙고 중이다. 함께 공존할 수 없기에 물리적으로 방벽을 둘러쳐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


몇 해 전에는 매가 날아들어 닭을 공격했다. 날카로운 부리로 한 번 물면 놓지 않아 울타리 안에 있는 닭들에게 상해를 입혔다. 매도 얄밉다. 발견하고 달려가면 높은 나무 위로 가뿐히 날아올라 내려다본다. 쳐다봐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오히려 감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매로부터 닭을 보호하기 위해 방비를 잘해 두었다. 새총도 준비했는데 정작 새를 잡기 위한 건 아니다. 심신 수양으로 훈련 중이다. 멀리 있는 나무 표적을 맞히기 위해 연습하고 있다. 새총이 있는 걸 알았는지 위협적인 새들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새들 중 가장 영리한 개체는 까마귀다. 까마귀는 달걀도 훔쳐 먹는다. 다른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 땅속에 심어 놓은 콩도 찾아내 먹어 치운다. 역시 얄밉다. 날개가 있는 녀석들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딱따구리도 부지런히 나무를 쪼아 댄다. 부리가 얼마나 튼튼한지 나무 중 가장 단단한 참나무에 집을 짓기 위해 구멍을 낸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쫄 때는 일정한 박자가 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목탁 소리처럼 들린다.

가끔 오소리도 내려왔는데, 이젠 보이지 않는다.


여러 동물들이 각자의 삶을 찾아 다가오지만 막연히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존하면 좋으련만 생태계의 순환구조에서 그 구분은 모호해지고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아닌 방어적 공생관계를 위한 방책이 필요하다. 좀 더 영리한 사람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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