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힌다. 되돌릴 수 없고 지울 수 없어 더 치명적이다. 비수는 언제 어디서 어느 순간에 날아올지 모른다. 작심하고 던진 사람이 있고 습관적으로 내던진 사람도 많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말의 무게가 갈수록 버겁다. 한마디 말의 파장과 위력을 늘 새기고 뱉어내야 하는 이유다. 어느 경우에도 그 비수를 던진 사람이 내가 되지 않기를 경계하고 경계한다.
그래서일까? 먼저 말을 건네지 않는 것들에 관대하고 너그러워진다. 말없이 말하는 것들에 먼저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 이끌림과 소통이 좋다.
농장에서 늘 나를 기다리며 가만히 따라다니는 야옹이 가을이에게는 미소와 쓰다듬의 언어로 말한다.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야~옹'하는 가을이의 응대에 나는 웃음으로 화답한다.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며 지금은 베어 없어진 남녘 고향의 정취를 떠올리게 하는 대나무에게도 다정한 어투로 말을 건넨다. 대나무는 사각거림으로 존재를 알린다. 때론 유난히 푸른 잎의 언어로 인사한다. 해마다 늘어나는 대나무의 기세가 놀랍다. 올해 새로 나온 대나무 마디마디는 유독 굵고 길다.
계절에 따라 자신이 지닌 최상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찾는 이를 즐겁게 하는 '남천'에게도 고마움의 말을 수시로 전한다. '남천'도 고향에서 왔다. 그래서인지 더 반갑고 정이 간다. 때맞춰 나름의 멋을 뽐내는 '남천' 덕분에 농장의 조경이 살아난다. '남천'은 알아서 제 몫을 할 테니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당당하게 자리한다.
배롱나무도 여름 내내 붉은 꽃망울을 피어 올리며 나를 웃음 짓게 했다. 뜨거울수록 꽃은 싱싱하고 진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단박에 알아채는 오랜 친구 같은 나무라 더욱 좋다.
자신의 상황을 또렷한 목소리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꼬꼬들과의 대화도 재밌다. 꼬꼬들의 말을 알아듣게 됐을 때, 그들의 존재가 신기하고 반가움은 더 커졌다. 목이 마를 때, 배가 고플 때, 위협을 느꼈을 때, 불안할 때 내는 소리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꼬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문제를 파악한다. 바로 해결해 준다. 꼬꼬들과의 대화는 교감과 공감의 과정이고 돌봄의 약속이다.
말하지 않는 것들이 건네 오는 말들은 단순하면서도 곱다. 말하지 않는 것들에 건네는 말도 군더더기 없이 고울 수밖에 없다.
유독 말이 없는 분들이 있다. 말이 없다고 무뚝뚝한 건 아니다. 말이 없는 분들은 미소로 말을 건네고 웃음으로 화답한다. 미소를 보며 건너가는 말은 부드럽고 상냥하다. 침묵으로 말하는 분들은 고운 말을 불러낸다. 오는 말이 고우니 가는 말도 정제되고 고울 수밖에 없다. 헤어지고 나서도 잔잔한 여운으로 마음을 다독여 준다.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헤집는 말을 하는 사람은 사회의 악이다. 세월의 군더더기가 많아지니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가장 해롭다. 해로워 만나지 않으니 마음을 해치지 않아 좋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힘이 있다는 이유로, 권한이 많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결코 험한 말이나 무례한 말이나 훈수 두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그래야 어른이고 제대로 사는 삶이란 걸 가르쳐 주는 분들이 가끔은 있어 다행이다.
오는 말을 듣는 모두가 좋은 말,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용기의 말, 다시 딛고 일어설 말, 사랑과 감사의 말만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