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서막
도시를 떠난다는 건 운명을 바꿀 선택이다. 현실에 펼쳐진 무수한 삶의 편린들을 주워 담고 버리고 묻어 놓고 떠나야 한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마음속에 그려 놓은 청사진은 늘 허무한 꿈에 머문다. 붙잡고 있는 것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보다 무거워 움직이지 못한다. 떠나라고 떠미는 힘은 고무줄 같다.
어쨌든 떠나야 할 이유는 한 가지고, 떠나지 못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어릴 적부터 몸과 마음에 새겨진 목가적 풍경과 정서는 그곳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고 밥벌이를 하는 내내 든든한 배경이었고 다시 돌아가고픈 안식처였다.
남도의 고즈넉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육중한 기차가 산모퉁이를 돌아 나오고 멀리 산 중턱엔 광주를 거쳐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가 놓여 있었다. 백의종군의 치욕을 감내하며 여수로 향하던 충무공의 길을 따라 학교를 오갔다. 그 길과 마을 중간쯤에 꽤 넓은 냇물이 흘렀다. 물고기를 잡고 멱을 감으며 겨울이면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고 나무를 깎아 만든 스틱으로 아이스하키를 즐겼다. 강건한 체력의 출발점이었다.
냇가를 가로지른 다리는 여름밤 동네 아이들의 집결지였다. 아직 한낮의 열기가 식지 않은 다리 위에 나란히 누워 바라본 밤하늘은 별천지였다. 황홀한 은하수는 지금도 눈 감으면 또렷이 펼쳐진다. 칙칙 뿌려대는 별똥별의 출몰은 경탄과 환희의 대상이었다. 조잘조잘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둠을 넘어 별들에게로 향했다. 별이 잠들기 전 아이들이 먼저 집으로 향했다. 지금도 별은 내 가슴에 있다.
마을의 논과 밭은 고만고만했다. 부농과 빈농의 차이는 미미하고 너나들이하며 오손도손 살아갔다. 인근 마을 중 어른도 아이도 온순하고 인정 많기로 소문났다. 오래전 그때는…
온 동네가 아이들의 놀이터요, 쉼터였다. 손에 잡히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장난감이고 놀이 기구였다. 산과 들로 지칠 줄 모르고 뛰놀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엄마들의 밥 먹으라는 외침에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추억은 소리로도 많은 걸 불러낸다.
어른들 몰래 숨어 놀던 아지트도 곳곳에 있었다. 그렇게 철저하던 곳이 비밀의 장소가 아님을 커가면서 알게 됐다. 마을 어른들도 거쳐갔던 곳이었다. 모른 체했을 뿐이다. 인기척이 느껴져 숨죽이고 있을 때 헛기침을 하고 지나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웃 마을에 비해 동네는 크지 않고 아이들 숫자도 많지 않았지만 어떤 대결에서도 지지 않았다. 모두가 일당백의 전사들이었다. 대보름날 볏짚을 태우러 오는 이웃 침략자들을 거뜬히 물리쳤다. 축구 대회도 우승을 밥 먹듯이 하고, 야구 시합도 주변을 평정해 가면서 완행 기차를 타고 원정을 다녔다. 구성원들의 신뢰와 단결이 실력 이상의 기량을 발휘하게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거의 모든 아이들은 소를 몰고 냇가나 들로 나갔다. 소는 분명 초식 동물이다. 사람보다 소가 우선이던 시절이었다. 소를 키우지 않아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소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아이들은 나름의 놀이를 즐겼다. 해가 지면 소들이 앞장서서 각자의 집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배부른 소는 느리고 여유로웠다. 동물의 본성을 살리는 축산, 자연양계는 마음 한편에서 움트고 있었다.
학교는 동네 어귀에 모여 함께 갔다. 오며 가며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간섭하고 장난치며 한 눈 파느라 세월아 네월아였지만 지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가던 길은 직선이 되고 시간은 한결같이 흘렀다. 현재는 변하지만 추억은 그대로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의 시간들이 아득하면서도 뭉클하다. 함께 다녔던 이들은 모두 흩어졌다. 아주 가끔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묻는다. 가까울수록 더 만나기 힘들고 멀어지는 건 세월 탓일까? 세상 탓일까?
서둘러 떠나 간 친구도 여럿, 학교도 사라지고 길도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은 모조리 마음에 담겨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새록새록 돋아나며 자석처럼 그곳으로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