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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Apr 12. 2024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기적의 순간들

메마른 가지에 봄이 왔다고 여린 새순이 돋아나는 것도 기적이다. 하루가 다르게 피어오르는 연초록 어린잎이 농부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마을 앞 천변은 벚나무들로 울창하다. 15년 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어린 나무들이었는데 어느덧 훌쩍 자라 위용을 자랑한다. 벚나무들은 작년 여름 무렵 일찍 모든 잎을 떨궈냈다. 심한 몸살을 앓아 올봄에는 화려한 꽃을 보기 어렵겠다고 이구동성이었다. 걱정했는 데 놀랍게도 어느 해 보다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장관이다.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부터 지금의 순간까지 모든 과정과 성장이 기적이다.


몇 해 전, 멀리 남도 고향마을에서 하얀 민들레 홀씨를 가져와 농장 주변에 뿌렸다. 그 여린 홀씨가 뿌리를 내려 하얀 꽃을 피워냈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멀리멀리 날아간 또 다른 홀씨가 어느 집 마당이나 들판 한 자락에 수줍은 듯 내려앉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기적 같은 일이다.


하늘을 나는 작은 새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사방이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들로 가득해 날렵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입에 풀잎을 물고 있던 작은 새와 눈길이 마주쳤다. 깜짝 놀란 눈이 휘둥그레 해졌지만 물고 있던 가지를 놓지 않았다. 집을 짓기 위해 분주하다. 놀라서 물고 있던 가지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염려되어 얼른 자리를 피했다. 작은 새들은 여린 잎사귀와 가느다란 풀잎으로 우거진 나뭇가지나 대나무 잎 사이에 집을 짓는다. 촘촘히 짜인 정교하고 튼튼한 솜씨가 예술이다. 큰 새들은 집을 짓기 위해 굵은 가지들을 주워 나른다.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어설픈 듯 얼기설기 집을 짓는다. 그 집은 거센 비바람에도 거뜬하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새들의 집은 그대로다. 새들이 집을 짓는 과정과 모습은 기적 같은 일이다.


가족과 함께 낯선 곳으로 왔을 때 어느 것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부족한 자금이었다. 시골에 정착하고 농장을 만들어 가는 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돈 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돈이 필요해 친구에게 어렵게 부탁했다. 잠시 후 친구 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급전 필요할 때는 언제든 말씀하세요". 뭉클한 감동이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다시 힘을 내며 열심히 살아갈 용기를 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생면부지 타향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다. 새로 적응하고 융화되며 살아내는데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이다.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디서부터 이어져 온 인연인지 생각할수록 새삼 놀랍다. 존재 밖의 인연들이 새로 맺어지고 연결되면서 필요할 때마다 뜻하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개척시대 같은 험난한 농부의 시간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그 인연들은 기적의 선물이었다.


어릴 적 고향마을을 울창하게 뒤덮고 있던 것은 대나무 숲이었다. 대나무는 아이들의 놀이 기구로 변신했다. 대나무로 활을 만들고 창을 만들고 살을 다듬어 연을 만들었다. 마디를 자르고 구멍을 뚫어 물총도 만들어 놀았다.

대보름날에 달집을 만들 땐 대나무가 주인공이었다. 대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는 클래식 선율이 되어 어린 소년의 마음을 붙들었다. 도시를 떠나 정착한 이곳에도 대나무가 많았다. 대나무의 북방한계선 경계에서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위로가 되고 말 벗이 되고 추억이 되며 병아리의 간식이 되는 대나무를 가까이 두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농장을 오염되지 않게 관리하고 운영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지렁이가 꿈틀대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기적이다. 나사의 용도를 몰라 목공 작업에 마냥 서툴렀던 초보 일꾼이 시간이 흘러 비가 새는 지붕을 직접 수리하는 목수가 된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친한 친구와 사촌 형이 몇 해 전 뇌출혈로 쓰러져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다행히 친구는 부인의 빠른 대처가 있었다. 수술과 재활치료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예전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촌 형은 한참 뒤에 발견되어 오랜 시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사촌 형은 더디게 회복된 만큼 약간의 후유증은 있지만 다시 복직을 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갑자기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한다. 늘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형수님을 천사라고 부른다. 친구는 45년 지기다. 듬직하고 힘이 되는 둘도 없는 친구다. 사촌 형은 장남인 내가 기댈 수 있고 뭐든 부탁하면 들어주는 존재였다. 친구와 사촌 형을 불의의 병마로부터 다시 되살려준 일도 기적이라 말하고 싶다.


작가가 되고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이렇게 마음껏 쓸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날마다 갈고닦아 누군가의 삶에 양분이 되고 위로가 되며 희망이 되는 한 문장을 남기고 싶다. 그런 기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쓴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누군가의 애타는 기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일이거나 현실일 수 있다. 기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누리고 싶은 사람의 간절함이다. 우리 모두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기적을 선물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기적은 모두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오늘을 잘 살아내고 내일의 또 다른 꿈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기적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제껏 잘 버티고 살아온 것이 가장 큰 기적이다. 그 기적의 중심에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있었다. 앞으로의 순간들도 기적 같은 일들로 가득 채워지리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하루하루도 기적 같은 일들이 함께 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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