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그곳에 있었다
어느 해 보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한낮의 폭염은 가혹했다. 세상 모든 생명들이 지쳐 보였다. 파릇하게 여름을 이겨내던 식물들도 축 늘어졌다. 모두가 생존과 보존을 위해 알아서 피서할 곳을 찾아야 했다. 올해가 가장 덜 더운 여름이라는 사실이 아찔하다. 오지 않은 내년을 앞서서 걱정해 본들 부질없음을 알기에 하루하루만 견뎌낸다. 위로가 되는 건 시간뿐이다. 한낮은 아직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더위에 잠 못 이루다 어느 순간 자다가도 춥다며 이불을 끌어당긴다. 그렇게 여름은 억지로 가고 가을이 힘겹게 오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는 길이다. 무심코 지나칠 때가 더 많다. 문득 뜨거운 햇살 아래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잡초인 듯 아닌 듯 구분이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 정체를 알게 됐다. 경이로웠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사이에 피어난 작은 꽃 하나. 채송화였다.
언제부터 싹을 틔워 저만큼 자라 꽃을 피워 냈을까? 기특하고 대견했다. 날마다 지나다니는 길에 채송화의 안부를 확인한다. 수시로 들락거리는 자동차 바퀴에도 상처 입지 않았다. 무심코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도 밟히지 않았다. 위태롭고 애처롭지만 꿋꿋하다. 악조건에서 살아남아 꽃을 피워 냈으니 어지간한 위협이나 상황은 대수롭지 않나 보다. 채송화는 햇빛이 쨍쨍한 날 낮에 활짝 피고 오후 2~3시가 되면 시든다. 매일을 반복하며 오랜 시간 존재를 뽐낸다.
바로 옆에 예쁜 정원이 있다. 꽃씨는 분명 그곳에서 날아왔다. 주인아주머니의 정성과 감각이 빛나는 정원이다. 수시로 오가는 길에 눈요깃감으로는 최고다. 그 정원에 채송화도 듬뿍이다.
어느 날 꽃씨 하나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생존의 가장 극한으로 내몰렸다. 개미도 건너뛸 정도의 조그만 틈을 꽃씨는 넘지 못했다. 최소한의 흙 알갱이와 가뭄의 단비 같은 물이 가끔씩 스며든다. 척박하다. 그래도 살아야 했나 보다. 강렬한 햇빛이 오히려 생존의 의지를 불태웠을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처절했을 몸부림이 또 다른 양분이었다. 둘러보면 벽이고 함정인 세상에서.
채송화는 보여준다.
탓하지 않았다. 남 탓하고 환경 탓할 여유가 없었다. 살아남아야 했기에 핑계를 찾는 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원망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든 굴러떨어진 곳이 극한의 땅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마주한 현실은 가혹했다. 무엇도 원망할 수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을 향해 위로 위로 오르는 게 중요할 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악착같이 버티며 기다리는 일이 전부였다. 쓸려오는 흙을 기다리고 흘러오는 물을 기다렸다. 바람에 날려오는 먼지는 양분이 되었다. 이 모든 건 꽃을 피워내기 위한 희망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가련하고 순진하며 천진난만한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살면서 목격하고 경험한다. 의지와 상관없이 무수히 고꾸라진다. 선택과 상관없이 내몰린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갔는데 벼랑 끝이다. 남이 아닌 나에게만 가혹한 삶이다. 그래도 살아낸다. 꿈을 잃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모질게 살아남는다. 여기저기서 빛이 보인다. 희망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는다. 그러면 됐다. 반드시 꽃은 핀다.
폭염 속에서 꿋꿋하게 피어난 생명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