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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Jun 21. 2024

말빚을 남기지 않는 하루

함부로 내뱉지 말자

너무 많은 말을 쏟아 냈다. 그럴수록 마음만 무거워진다. 쏟아내고 뱉어 내면 가벼워져야 하는데 말은 그렇지 않다. 덜어내지 못하고 더해져만 가는 삶의 무게도 말로 인해 비롯된다. 상대방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 말의 성찬은 허기진 배를 채우듯 일시적 포만감은 들었으나 마음을 채우는 양분은 되지 못했다. 말은 지극히 단순했다. 정작 채워야 할 알맹이는 담지 못하고 헛물만 켜는 스스로의 모습은 후회만 안겨 주었다. 그럴 때마다 자책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깊어졌다. 알면서도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괴롭다.


말은 기계적, 본능적으로 나오는 의성어가 아니다. 말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 지식과 지혜, 인품과 태도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닦지 못하고 바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감각의 대가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말의 힘과 가치와 품격은 습관처럼 나오는 정제되지 않는 말로 인해 드러난다. 걸러지지 못한 말은 보여주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것과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말은 껍데기다. 알맹이는 말하지 않는 깊은 속내에 담겨 있다.


알면서도 행하기 어렵고 다듬기 어려운 게 말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쌓인 듯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 든다. 말을 하지 못해 오는 후회보다 말을 많이 하고 난 뒤의 허무와 자책이 크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기어이 내뱉고야 마는 심리의 기저가 의심스럽다.  말을 적게 할 때는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툭 던진 한마디가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로 인해 받은 상처와 아픔은 견딜만하다. 어느 정도 쌓인 내공과 이성적 판단에 따른 대응으로 거뜬히 극복해 낸다. 문제는 내가 한 말들로 인해 타인이 받게 될 고통과 무시와 모멸의 상황들이다. 말실수를 했다는 자각이 들면 감내하기 힘든 책망으로 혼란스럽다. 돌이킬 수 없고 주워 담을 수 없으며 지워 버릴 수 없기에 괴롭고 아프다.


말을 가장 많이 주고받는 대상은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갈등이 커지고 지속되는 이유는 온전히 말 때문이다. 그 말은 방향과 역할에 대한 충고와 염려, 기대에 대한 조언일 수 있지만 듣는 사람에겐 잔소리와 간섭과 비난으로 들릴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하는 사람이 아무리 옳고 정당하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면 그게 맞다. 말은 하는 사람의 생각과 주장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가 핵심이다.


누구든 만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만 만남의 수준과 가치를 좌우하는 건 상대방의 신분과 목적과 장소가  아니었다. 결정적인 건 말이었다.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 말의 품격에 따라 어떤 사람, 어떤 자리였는지 가늠하는 잣대가 됐다.

무례하고 개념 없는 말은 나이가 많을수록 거침없이 나온다. 지위가 조금 높으면 권력이 되어 아랫사람에게 마구 퍼붓는다. 말의 폭력이요, 언어의 도구화이다.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주책바가지 어른은 되지 말자.


경청과 질문을 통한 만남과 대화의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상대방을 위한 질문을 하고 경청하는 자세만으로도 충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드러냄을 누르고 알고 있음을 자제하며 묻고 듣는 시간만으로 함께 하는 자리는 뿌듯했다. 


가벼운 말은 가벼운 만큼 반드시 실천해야 하고 무거운 말은 무거운 대로 그 값을 해야 한다. 말이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 않는 말엔 책임의 무게가 줄어든다. 말이 없으면 마음이 가볍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 말빚을 지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말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는지 자문해 본다.

다행이다. 오늘은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다시 생각하고 생각했다. 말이 적었고 목소리는 가볍지 않았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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