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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Jan 20. 2024

구부러진 길을 간다

곡선의 미학(美學)

빠른 것이 최고라 여긴다. 

최연소, 최단기간, 최단 거리에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까지 더해지면 가히 독보적이다. 

빠르기 위해서는 곧게 뻗어야 한다. 직선으로 솟구치듯 나아간다. 모든 길도 직선으로 놓인다. 

인생도 직진이다. 한 눈 팔면 안 된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다.

 길도 삶도 인연도 끝이 있다. 그 끝이 있는 길을 오직 직선으로만 달려 나가는 우리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지구는 둥글다. 

해와 달도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모두 둥글다. 

지구라는 공간에 깃들어 사는 인간은 그 둥근 바탕 위에 곧은 직선만을 그어 된다. 

위로 아래로 좌우로 곧장 달리게 만든다. 막히면 뚫고 건널 수 없으면 다리를 놓아 연결한다. 

곧고 빠르게 달려가 닿아야 할 그 지점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무조건 가는 게 중요하다.      

강은 산과 마을과 사람을 만나며 돌고 돌아 바다로 나아간다. 낮은 산도 곧바로 오를 수는 없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도록 길러지고 배워왔다. 

조금 쉬었다 가거나 뒤돌아 가면 낙오자로 취급되었다. 다른 길은 허용되지 않았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질주하며 달려온 세월의 마디마디마다 회한이 서리고 미련이 남는다. 

그 길모퉁이 어느 곳에 스스로를 위한 쉼터 하나 남겨 놓을 수 없었는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생의 길고 짧은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음 밭의 갈고닦음에 따라 달라진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조금은 느리고 부족하고 어긋나 보일지라도 기다려 주고 다독여주며 지켜봐 주는 느긋함이 필요하다.

멀리 가고 오래가기 위해선 쉬어가고 돌아가며 느리게 가야 한다.     


많은 이들이 지금 바로,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직진만을 고집하다 초라하게 사그라진다. 그들에게는 그 누구의 충언도 역사적 교훈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신만은 예외라고 믿으며 밀고 나간다. 둘러보고 살펴보며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인지도 모른다.      


직선은 뾰족하다. 

뾰족한 것은 많은 위험을 내포한다. 그 위험한 함정으로 우리는 더 빠르게 내몰려 왔다. 

교육이 그렇고 삶의 가치와 인생의 잣대가 그랬다. 

외줄 타기 하듯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직선의 삶을 살아온 경우가 많다. 

무작정 직선을 그리며 지름길을 찾아 내달렸다. 

직선의 길은 경쟁이다.

 직선은 가던 길이 막히면 주저 없이 더 빠른 직선을 찾는다. 

직선이 아니면 뒤떨어지고 어딘가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리한 선택도 직선의 길에서 행해진다. 무조건 남보다 빨라야 하고 높아야 하며 더 멀리 가 있어야 한다. 

직선은 과욕과 억지를 부른다. 앞서가며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과 생존의 현장에서 승자만이 박수받는다.      


곡선은 부드럽다. 

곡선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바탕이다. 곡선은 가장 자연스러운 선이다. 

곡선은 여유와 느림과 자유를 안겨준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음미하는 시간을 선물해 준다. 

관조의 삶은 둥근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곡선의 길을 가는 것은 주어지고 펼쳐진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같은 거리, 같은 곳을 가더라도 곡선의 길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한다. 

자신과 이웃을 살피게 해 준다. 함께 손잡고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시간은 직선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주저 없이 내달 린다. 기다려 주는 것도 없다. 

인생은 곡선이다. 

곡선의 휘어짐은 변절이나 변덕이 아니다. 아우르고 추슬러서 다 같이 가는 곧은길이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멀리 가기 위한 꿈틀거림이다. 


곡선의 시간과 공간을 걸을 때 인생길이 조금은 더 가치 있고 풍요로운 여행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비틀어지고 굽이진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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