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담 Mar 17. 2024

혼밥에 대한 위로와 응원

혼밥은 선택이고 용기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삶의 의지를 가장 원초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밥은 여럿이 먹거나 단둘이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함께 밥을 먹는 관계 속에는 수많은 사연과 이유가 존재한다.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마주한 밥상 위에서 교차하고 공유되며 치유되고 부딪친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며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름하여 혼밥이다. 혼자 먹는 밥엔 다양한 삶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마음 저미는 혼밥의 기억이 있다. 아궁이에 불을 넣어 무쇠솥에 밥을 하던 시절이다. 어머니는 끼니마다 가족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때며 밥을 하고 국을 끓이셨다. 나무로 이어 만든 선반과 큰 도마에서 식구들을 위한 반찬을 만드셨다.

안방에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와 동생들이 어머니가 차려내 주신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상을 두 개 놓고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부족한 반찬과 물을 수시로 가져다주셨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는 자리에 어머니만 안 계셨다. 어머니는 매캐한 연기가 스며 있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혼자 밥을 드신 것이다. 그 시절 어머니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집을 떠난 뒤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을 먹지 못하게 되면서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 났다. 부엌에서 홀로 밥을 드셨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얼마나 서럽고 외로운 시간이었을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의 숙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어머니의 혼밥에 위로를 드리며 가족을 위한 무한 희생에 고개 숙인다.


서울에 살면서부터는 혼자 밥을 먹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도시에서는 혼밥의 시간이 자연스러웠다. 배가 고프거나 맛집이 눈에 띄면 당당하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느 곳에서도 눈치 보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음미하며 천천히 먹기도 하고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먹기도 했다. 혼밥의 자유가 좋았다.


터미널이나 기차역 주변에 가면 혼밥 하는 사람이 많다. 어디론가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사람들, 결과를 떠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혼자 밥을 먹는다. 오히려 혼자가 아닌 게 민폐가 되기도 한다.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은 각자의 일정과 결과를 표정으로 말한다. 그들은 대부분 훌쩍 먹고 떠난다.


지역에 꽤 유명한 칼국수집에서 아내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탁 곳곳엔 많은 손님들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다. 주문한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 데 혼자 들어온 손님이 있다. 출장을 나온 회사원이 지역 맛집을 검색하고 찾아온 듯하다. 칼국수가 나오자 사진을 찍고 만족한 얼굴로 먹기 시작한다.


회사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들어온다. 모 통신사 서비스 센터 직원이다. 얼굴 표정이 밝아 보인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끊어진 불편함 들을 말끔히 해결해 주고 온듯하다. 칼국수를 집어 올리는 젓가락질에 여유가 묻어난다.


택배기사님이 들어온다. 발걸음이 빨라 보인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연신 핸드폰으로 뭔가를 체크한다.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해야 하는 고단한 하루의 중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시간도 아까워 보인다. 칼국수를 식히기 위해 빠르게 젓가락을 휘젓는다.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창 모자를 쓰고 조금은 낡은 옷을 입은 어르신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오신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신다. 얼마 전부터 식당의 테이블이 모두 입식으로 바뀌어 다행이다. 아직 젊은 나도 좌탁에 양반다리로 앉아 밥을 먹는 것은 고역이다. 어르신의 젓가락은 느리게 느리게 움직인다. 혼자 사시는 걸까? 홀로 드시는 칼국수가 배고픔뿐만 아니라 외로움도 채워 드리면 좋겠다.

 

젊은 청년이 들어온다. 무표정이다. 뭔가 불만이 있는 표정은 아니지만 고민이 많아 보인다. 계획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걸까? 칼국수 한 그릇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힘차게 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혼자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패기 면 충분하다.


두두둥 둥둥 심장을 울리는 소리를 내며 바이크한대가 식당 앞에 멈췄다. 멋진 바이크 복을 입은 라이더가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들어온다. 멋지다. 꿈꾸는 모습이다. 바이크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 점찍어 둔 맛집에 들러 혼자 먹는 밥은 여행자의 낭만이요 특권이다. 물론, 상상 속에서만 그리는 꿈이다.

아내가 바이크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오후 늦은 시간, 철물점에 물건을 사러 갔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장님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혹시 저녁식사 함께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모두가 약속이 있다는 대답이 스피커폰 밖으로 새어 나온다. 사장님의 난처해하는 표정을 보고 있던 사모님이 함께 식사할 분이 여기 계시는 데 왜 자꾸 다른 사람을 찾느냐며 나와의 식사를 권하셨다. 사장님의 얼굴이 환해지며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만난 지는 오래되었지만 한 번도 밥 한 끼 같이 먹어 본 적이 없었는 데 마침 잘 됐다며 좋다고 했다.

사장님이 저녁을 먹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한 것은 사모님이 따로 약속이 있어 혼자 밥을 먹어야 되는 데 언제부터인가 혼자 밥 먹는 게 영 내키지 않아 밥 동무를 찾게 됐다고 한다. 철물점 사장님에게 혼밥은 어렵고 어색한 시간이다. 혼밥은 선택이기에 이해한다. 혼밥의 짐을 덜어 드린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대접받았다.


혼밥은 자신과의 대화다. 혼밥은 그리움이다. 혼밥은 위로다. 혼밥은 스스로에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든 혼밥은 나만을 위한 성찬이다. 혼밥을 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반찬 삼아 밥을 먹는다. 혼밥 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아버지, 할머니!  가만히 불러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