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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Aug 09. 2024

진짜 전문가는  눈높이를 맞춰주는 사람

높이는 것보다 낮추는 게 어렵다

닭을 키우다 보면 알게 된다. 닭을 돌보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닭이 가지고 있는 본성과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용하는 일이다.

닭은 조류다. 날개가 있기에 자유로이 날 수 있는 공간은 필수다. 뾰족한 부리로 무엇이든 쪼아 먹는다. 가리지 않고 잘 먹어 최고의 재료들로 모이를 만들어 준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끊임없이 바닥을 파헤치며 흙 목욕을 즐긴다. 바닥은 흙과 낙엽과 부엽토로 채워진다. 건강한 유정란을 낳기 위해 수탉과 암탉이 일정한 비율로 어우러져 지낸다. 아늑하고 안전한 곳에서 알을 낳는다. 왕겨가 깔리고 커튼이 쳐진 산란 상자가 자리하고 있다. 배변활동은 잠을 자는 동안 80% 이상 이루어진다. 청결한 위생관리를 위해 일정한 높이와 기울기의 횃대가 놓여있다. 닭은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을 먹는다. 사시사철 자연수가 흐른다. 닭은 아침이 오는 걸 가장 먼저 알리고 해 가지면 바로 잠잘 준비를 한다. 닭들이 생활하는 곳에는 어떤 조명 시설도 없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 환경을 위해 별도의 냉난방 시설도 없다. 사람의 편의와 이익에 따라 닭을 대하면 닭과 사람 모두 행복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닭은 미련하다'라는 전제도 버려야 한다. 인간의 독단이 만들어 낸 무지의 개념이다. 모든 환경을 닭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려 여름이 고역이다. 걷기만 해도 금방 옷이 땀에 젖는다. 조금만 움직여도 기진맥진이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는데 닭 모이를 쌓아둔 포대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애완묘 '가을'이가 보인다. 가을이의 세상도 단조롭지만 일정한 루틴이 있다. 개냥이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주인의 지치고 힘든 모습은 안중에 없다. 눈을 가늘게 뜨고 힐끗 바라보다 한껏 기지개를 켜며 ‘야옹’하면 끝이다. 다시 잔다. 얄미운 마음보다는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고양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가을이는 늘 주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와 최적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존재하는 생명들은 모두 미개하거나 어리석은 하등동물이다. 만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에서 인간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가장 오만하고 탐욕적이며 야만적인 동물이 사람이다. 인간은 오로지 자신들의 관점에서 모든 걸 판단하고 규정하며 재단한다. 미물도 나름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다. 쓸모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존의 기준은 오로지 인간만이 결정한다. 모든 불행과 불평등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런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흔하다.


자녀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육아와 관심과 돌봄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의 욕심을 채우고 사회의 통념에 맞추기 위해 아이를 기르는 일은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부모는 자녀가 좋아하며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어보고 들어주고 마음껏 할 수 있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리만족을 위한 도구도 아니다. 부모의 텅 빈 무지와 그릇된 고집과 선입견으로 자녀들의 빛나는 오늘과 내일을 그릇되게 해서는 안 된다. 자녀와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부모가 진짜 부모다. 지혜롭고 너그러우며 존경받는 부모되기가 어려운 이유다.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에 해법을 제시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많다. 최고 학력과 이력으로 무장한 그들의 프로필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온다. 강사료만 해도 부르는 게 값이다. 문제는 그들이 전문가로서 알려주는 내용들이 얼마나 쉽고 간결하게 대중들에게 전달되느냐이다. 어려운 용어와 난해한 해설을 곁들여 자신의 지식만을 뽐내는 전문가는 그냥 전문가이다. 진짜 전문가는 다르다. 자신의 이론과 주장을 간단명료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여러 사람에게 전문지식을 전달할 때는 쉽고 명확하게 표현하며 이해시킨다.  최고의 전문가는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 지식을 어린아이들도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 그런 전문가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공사 현장에서 전문가를 만났다. 30여 년을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진 전문 기술자는 자신이 하는 어떤 일에도 막힘이 없다. 도우미로 외국인 노동자를 데리고 다닌다. 곁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이 많았다. 작업 중 수시로 심부름을 시키는 데,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인상을 쓰면서 답답해한다. 나 또한 무엇을 가져오라고 하는지 선뜻 알아듣지 못했다. 그 노동자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게 분명했다. 더군다나 공사 현장에서는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공용어처럼 구사된다. 특히 변형된 일본어가 대세를 이룬다.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 문제다.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신은 이 분야의 전문가 아닌가. 경험이 부족하고 국적이 다른 일꾼의 눈높이에 맞춰 일을 시키는 현명함이 아쉽다.


체험학습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목공예 체험으로 새집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상이 초등학생이다. 새집을 만드는 과정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된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재밌고 가치 있는 활동을 수행한다. 만들어진 새집은 새들의 눈높이에 안성맞춤이어야 한다. 적당한 크기의 출입구와 알을 낳고 품으며 새끼를 돌볼 수 있는 공간, 약간의 통풍시설도 곁들여진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우러나면 눈높이는 저절로 맞춰진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조건은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다. 눈높이는 존중이고 관심이며 배려다. 눈높이는 겸손이며 실력이다. 눈높이는 전문가의 자질을 검증하는 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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