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지붕 Mar 23. 2024

슬기로운 노년일기

우리들의 된장 블루스


며칠 새촘한 꽃샘바람이 불어오더니 오늘은 훈풍이 불어온다. 하늘도 맑다. 일찍 집은 나선 나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들판을 달리고 있다. 사브작 사브작 땅 위로 올라오는 봄의 기운이 이 아침을 더 생기 나게 한다.

노란 수선화가 나를 맞이하는 시골 친구네 집. 오늘은 우리들의 된장 담는 날이다.

미리 주문한 메주는 먼저 도착해 있고 인터넷으로 사다 보니 잘 띄워진 것인지 아닌지, 하긴 실물을 봐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겠지만 후기를 꼼꼼히 읽고 나름 깐깐하게 주문을 했다.

콩 한말은 8킬로이고( 지역마다 한말의 기준이 다르기도 하지만 ) 메주 4장이 거의 한말이라고 한다. 마른 고추와 숯도 같이 왔다. 간수 뺀 천일염도 준비하고, 역시 인터넷에서 수소문하여 주문한 소금이다.

좋은 소금은 짠맛 뒤에 단맛이 살짝 온다 하여 열심히 맛을 보기도 하고, 수분기가 있나 손에 쥐어보기도 하며 글로 배운 이론을 실습으로 해본다.

메주는 말갛게 씻어 봄 햇살에 아래 내려놓고, 천일염은 체에 밭치고 물을 내려 소금물을 만든다. 달걀을 띄워 동전 500원짜리 크기만큼만 올라오면 염도가 맞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사과농사를 지으며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친구네 집.

사시사철 새로운 모습을 연출하는 시골풍경에 더 정이 가는 것을 나이 탓이라고 해야 하나? 그 탓에 자주 놀러 가게 되는 친구네 집이다. 얼마 전에 냉이를 캐러 왔다가 된장을 담아보기로 작당모의를 하였고 오늘이 바로 그 디데이인 것이다.

무공해 항아리를 사야 한다며 잿물로 시유한 항아리를 찾아 삼만리~ 를 하여 장만한 항아리에 메주 4장씩을 넣고 소금물을 넣는다. 항아리 크기가 20킬로인데, 메주가 8킬로이면 소금물이 12킬로라는 계산인데 소금물의 양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건고추와 숯을 넣으면 미션완료. 

된장을 담겠다고 설레발을 치는 두 할머니들을 별로 미더워하지 않는 듯하던 과수원사장님도(친구남편) 항아리를 들여다보며 신기해한다.

봄햇살아래 반짝이는 장항아리를 보니 우리들이 엄청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뿌듯함이 올라온다.

재주는 없지만 열심은 가득했으니, 

바람과 햇살아래 그저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자연스럽게 익어가길... 




이틀이 지나자 장독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이젠 장독도 그리워질 모양이다.

벌써 색이 나는 것이 맛도 괜찮다는 친구의 소식이다.




작가의 이전글 슬기로운 노년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