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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Jun 29. 2024

6월의 마지막 전에

그냥 일기



당신 만나러 가느라 서둘렀던 적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도착하지 않은 당신을 기다린 적 있습니다


김재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제는 최치언 시인의 <레몬트리>를 읽었다. 시화집이 왜 이렇게 두껍지 했는데 만화였다. 서사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니 시가 주는 여운이 너무 강했다. 세상 모든 시는 어쩌면 연애시일지 모른다는 글쓴이의 말이 인상 깊었다. 그 말을 따라가다 보니 6월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부턴 비가 온다고 했다. 장마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날이될 거다. 내일은 드디어 쉬는 날이다. 매일 연습실에 나가는 게 일상이 되자 쉬는 날이 고팠다. 문제는 다음 주가 공연인데 쉬어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과 덜 준비되었다는 마음이랄까.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하고 미숙한 건 알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부족이랄까.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돌아가면 안 되는 거니까. 사실 이것도 잘 모르겠다. 그전에 공연을 올려봤어야지 마음가짐을 알지.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는지 난 모르니까.


확실한 건 이번 일은 살면서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무대에 서기 전부터 무대에 오르기까지. 

어제부터 백석예대 졸업작품 공연을 하는 거로 알고 있다. 연락까지 왔기에 졸업 공연을 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맞질 않는다. 하필 내일이 쉬는 날이라. 


강가출판사라고 올해 초에 연락했었다. 공모전 같은 거였고 책 출간 프로젝트 비슷한 거였다. 6월에 다시 연락하자고 했던 거 같은데 시간이 벌써 이만큼 지났다. 도저히 이번 달엔 뭔가를 겸업할 수가 없다. 사실 희곡도 이제야 최종본이 나왔다. 공연 후에도 어쩌면 바뀔 텍스트일 테고.


많은 시간이 지나면 26살의 여름을 기억하려나. 그땐 다른 여름이었을까.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헤어짐을 수반하는 걸 테고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진다는 건 감성으론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 같았다. 이성으론 이해가 되지만 이해가 되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다른 이야기니까. 이번 주엔 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실명을 거론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성만 남긴다. 네이버에 검색만 해도 나오니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따로 나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나도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되었고 네이버를 통해 장례식장과 발인을 알게 되었으니까. 소식을 접했을 땐 연습 중이었고 더욱이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고민하다 부모님께 물었고 의견을 따랐다.


서울에 산 게 4년인데 그중에 죽음이 3번 들렸으니 1년에 한 번 꼴인가. 이렇게 적으면 뭐 친밀한 사이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아니다. 선생님은 내 이름도 모르는 거로 아니까. 얼굴은 기억하셨던 거 같다. 


그냥 친함과 안 친함을 떠나 그런 소식을 들려오면 착잡하다. 누구는 졸업 작품 공연이라는 축하하는 소식을 들려줄 때 한 곳에선 반대의 소식을 전한 거니까. 그러곤 난 둘다 가지 못 했다. 축하하러도 위로하러도.


글을 쓰는 중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휠라 신발 얘기를 꺼냈다. 이번에도 엄마는 서울에 올라와서 용돈을 주고 갔다. 두고 간 5만원짜리 다섯 장. 엄마는 내게 연습하느라 힘드냐고 물었다. 인스타로 공연 정보를 봤다고 했다. 너 00이랑 같이 올린다며.


엄마가 알고 있었구나. 그 사실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말 안 했는데.


30일에 쉰다는 소식에 필메 품앗이 게시판을 들어갔다. 30일에 촬영한다는 글에 메일을 보냈다. 20:30분에 메일이 하나 왔다. 자신의 번호를 적어뒀고 함께할 의향이 있다면 연락을 남기라는 거였다. 22시에 확인한 나는 문자를 한 통 보냈다. 곧 돌아오는 대답은


"앗 답변이 없으셔서 다른배우분 섭외됐네요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꼭 함께하길 기원 합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옮겼다. 22:01분에 보낸 나의 문자에 답장은 거의 1-2분만에 온 것 같다. 답장을 보는 동안에도 난 연습실 안에 있었는데


할 말이 없어졌다. 연습은 끝나지 않았고

돌아온 답장은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들었으니까.


"엇 (임티) 알겠습니다"

하고 수신을 보냈다. 곧 돌아오는 대답


"거듭죄송합니다 일정을 마추느라 급해서요;;"


글로 옮기니 다시 어이 없어지기도 하고. 뭐 모르겠다. 각자의 사정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는가. 그냥 오늘도 화이팅이다. 나를 알든 모르든, 그냥 글을 어쩌다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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