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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Jul 19. 2024

우리가 함께 장마를

그냥 일기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의 유명한 시집이 생각났다. 이유는 명료했다. 광화문 서점에서 그 시집을 봤으니까. 오늘은 해가 쨍쨍했다. 장마인 게 무색할 만큼. 그리고 여름인 게 실감날 만큼 더웠다. 너무 무더워서 땀이 마르질 않았다. 이렇게 더워도 되나 싶을 만큼 더웠다.


몽골에 있다 온 탓인지 너무 덥다. 한국의 여름에 적응해야 하는데. 을지로에서 걸어서 광화문으로 갔다. 그래도 건물 빌딩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본가에서 어제 막차를 타고 상경했다. 서울에 온 이유는 달리 없었다. 일단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오늘 친구와의 점심 약속도 있었으니까. 점심을 먹고 서점을 구경하다 헤어졌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차 막히기 전에 가자는 친구의 말에 


벌써?


라고 말하지 못했다.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나 너 보려고 지방에서 올라온 건데, 라고도 말 못했다. 그냥 조용히 5호선을 타고 갔다. 그렇구나, 우리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지. 


아쉬움이 계속 생각을 만들었다. 만들어진 생각은 자의와 관련이 없어서 고통스럽다. 생각의 끝엔, 내가 재미 없었나 하는 자기 공격까지 간다. 그리고 아무 해답도 얻지 못한 채 지하철에서 내린다. 쨍쨍한 햇볕을 걸어가도 생각은 쉽게 마르질 않았다.


나는 항상 생각이 앞서간다. 사실 혼자한 생각의 결론은 어떠한 답도 내릴 수 없는데. 자기만의 생각이니까 그게 맞다는 결론이라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앞서간 생각은 목줄이 풀린 개처럼 내 것이 아니게 된다. 그렇지만 책임은 나한테 있다. 주인이, 점유자가 나니까.


글 쓰는데 좌파가 아닐 수 있어?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러게. 근데 아닌 사람도 있지 않나. 사실 그 친구가 말하는 정치의 기준이 나와 다른 거 같았다. 난 지금의 현 시국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잘 모르니까 조용히 한다. 내가 아는 건 니체와 마르크스로 시작하는 좌우파의 기원이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예민하다는 건 불편한 일이다. 주변에 모든 것들이 신경 쓰이고 잘못된 것이 자꾸만 눈에 밟히니까. 하지만 예민한 사람은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으니까.


나는 예민하다. 그래서 힘든 일이 많다. 맨박스마냥 남자가 그런 걸 신경쓰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변 남자 애들은 정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 훅, 잊는 거 같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 정도면 양반이구나 생각했다. 세상엔 많은 불평불만이 있었고


꼬인 애들은 속부터 꼬였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이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다르다가 아니었다. 이건 틀린 거였다. 하지만 내가 뭔데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 사람 입장에선 내가 틀린 게 아닐까. 그렇다면 틀린 사람들끼리 이걸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작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작은 문제는 너무나 사소해서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없을 테지만 이런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예민한 사람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가졌다는 실언을 하고 싶은 거다.

포기하면 편하니까.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주인공은 결국 포기한다. 사회주의 세상에 체념한다. 아무 생각 안 하면 편하니까.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보면 바꿀 것 투성이지만, 그것에 안주하면 안락하니까.


나는 아빠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나도 예민하게 세상을 보고 싶지 않고 안주하고 싶다. 더 나은 세상, 이런 헛된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위안을 하는 거다. 세상을 살아가는 게 힘든 만큼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나의 몫이라고. 그럴려면 내가 많이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할 텐데


이 또한 어려운 일일 뿐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든 거라고 했던 엄마 말이 맞았다. 그냥 남들처럼 산다는 게 제일 힘든 거라는 걸. 평범한 직장에 평범한 가정은 사실 평범한 게 아닌 축복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나는 부모님처럼 아내와 싸우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자식이 생긴다면 자식을 진정으로 위할 수 있을까. 괜히 관심이 과해서 혹은 잘못된 훈육 방식을 행하는 건 아닐까.


오늘 만난 친구는 나에게 글을 수정했냐고 물었다. 안 했다고 하자


다행이다


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했거든.


걱정을 사서 하는 친구였다. 나와 닮은 부분이 보였다. 처음 그 친구를 봤을 때부터 그 생각을 가졌다. 얘도 걱정을 사서 하네. 생각이 많은 애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신념이 뚜렷했다. 그리고 용기 있었다.


물론 그 친구는 부정할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단 용기 있던 거 같았다. 결국 모든 건 상대적인 걸 테니까.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엔 도서관에 들렸다. 희곡집을 세 권 빌렸다. 작은 도서관인 탓에 희곡이 책장 한 칸밖에 차지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절반도 없었다. 그냥, 내가 너무 요행을 바랐던 거 같다. 많이 읽고 써야 그만큼 좋은 글이 나오는 건데. 다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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