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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토 Nov 01. 2022

가타카 (1997)

우리는 모두 별의 일부였어

※ 2주가 넘게 지나 4화를 가져오게 되었네요.. 여러 가지 일로 바빠 늦어지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ㅠㅠ

이번 주는 두 편을 꼭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10월 24일이 가타카 개봉 25주년이 되는 날이었더군요. 워낙 명작으로 유명한 영화이다 보니까 저도 정말 어릴 적부터 나중에 꼭 봐야지 찜해뒀던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접했던 것은 1n 년 전 아마 'SF로 보는 과학~' 이런 종류의 책에서였던 것 같아요. 유전자에 의해 계급이 결정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 영화라는 점에 흥미를 느껴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으나 이제서야.. 이제서야 보게 되었네요...


최근에 <멋진 신세계>를 읽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설정이 <가타카>와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지요. 그래서 영화의 분위기도 책과 비슷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과학 기술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사회, 인간성이 말살당한 채 세뇌당한 사람들, 바뀔 수 없는 비극적 운명... 그러나 <가타카>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거대한 혁명과 전복을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힘이란 그리 쉽게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희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요. 무작정 밝고 동화적이지 않지만, 현실 속 힘겨운 발버둥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면서도 인간에 대한 낙관을 드러내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대보다 너무 좋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어ㅠㅠ)



스포일러 파트로 넘어가기 전에 하나 더 언급하자면, 스토리와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서도 주연 배우들의 비주얼이 정말 최고입니다... 넋 놓고 감탄하면서 봤어요. 특히 에단 호크를 요즘의 나이 든 모습으로 기억하는 저는 이때의.. 갓 어린 티 벗고 완성된 듯한 청년미가 신세계 같았습니다... (그래요 저 얼빠예요)



한 장면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의미를 부여한 꼼꼼한 연출도 정말 좋았는데요, 수직의 이미지에서 대상을 위와 아래에 위치하는 방식으로 인물 간 계급의 차이, 힘의 차이를 드러낸 장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보실 분이라면 그 점에 집중해서 영화를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까운 미래,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를 낳을 때 유전자 편집을 통해 유전적 결함을 제거하고 유전적으로 완벽한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공 빈센트는 자연 분만으로 태어나 유전적 결함이 있는, 근시와 심장 질환을 가진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부적격자로 분류됩니다. 빈센트는 자신과 달리 유전자 편집을 거친 동생 안톤과 자라면서 계속해서 비교되지요.


빈센트는 우주로 나가고 싶어 하는데, 부적격자는 우주항공 회사에 입사할 수 없습니다. 집을 나온 빈센트는 우주항공 회사 가타카에서 청소부 일을 시작하지요.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완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된 '제롬 모로우'에게 신분을 빌리게 된 것이지요. 제롬은 빈센트에게 혈액이나 소변 등의 샘플을 제공하고, 빈센트는 '제롬 모로우'로 살면서 진짜 제롬에게 수익의 일부를 나누어 주게 됩니다.



제롬 모로우로서 가타카에 입사하고 뛰어난 인재로 인정받은 빈센트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감독관이 살해당한 현장에서 빈센트의 눈썹이 발견되면서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 형사들이 빈센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빈센트는 수사망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요. 영화의 내용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 빈센트가 결국 우주로 나가는 꿈을 이루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빈센트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설명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은 제롬입니다. 빈센트가 제롬 모로우로 살기 시작하면서 원래의 제롬은 애칭인 유진으로 불리게 되고, 지금부터는 그를 유진이라고 이야기하도록 할게요.



이 영화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에 결말이 크게 한몫하는 것 같아요. 빈센트가 우주로 나가는 것은 예상 가능한 결말이지만,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와 동시에 유진이 자살하는 것이었어요. 그의 자살은 절망 속에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무언가 깨닫고 내려놓으며 자유로워지기 위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의 자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번에 와닿지 않아 찬찬히 생각해본 결과, 정말 탁월한 엔딩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할게요.



유진의 입장에서 바라본 빈센트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해 높은 지위를 누리게 된 사람입니다. 유진은 뛰어난 수영선수였고, 완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 다리만 멀쩡했다면 가타카 최고 직원 자리도 어렵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도 힘든 장애인이 되었고, 신분도 없이 떠도는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빈센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못마땅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어느 정도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빈센트에게 일부러 자존심을 내세워서 그래도 나는 이만큼 우월한 사람이라며 과시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국 유진은 빈센트의 의지와 열망에 감화됩니다. 빈센트는 꿈을 위해서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고 사회와 유전자가 그어 놓은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나가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죠.



유진도 어떻게 보면 한계에 묶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빈센트처럼 위로 오르지 못하는 삶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가 자신이 완벽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절대 내려가서는 안 되는 삶도 똑같이 자신을 묶어 두는 족쇄이지요. 사다리가 존재하는 한 위에 있든 아래에 있든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 유전자의 한계, 유전자에 따라 사회가 정해 주는 한계는 중력으로 상징됩니다. 우주로 나가는 로켓을 땅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빈센트도,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유진도 중력에 매여 있는 존재이지요. 빈센트가 결국 발사되는 로켓을 타고 지구 중력을 거스르게 된 것처럼, 유진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족쇄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습니다. 타오르는 소각장의 불길로 사라지는 것은 그 나름대로 중력을 거스르는 숭고한 행위였어요.



몸속의 원소도 한때 별의 일부였다고 들 한다.
어쩌면 나는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엔딩 장면에서 빈센트의 내레이션입니다.

우주로 나간다는 것, 불에 타 재로 사라진다는 것

모두 별의 일부로 돌아가는 일인 것이지요.



빈센트 같은 사람의 존재가 그저 하나의 독특한 예외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진처럼 빈센트에게 영향을 받아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용기를 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아이린은 빈센트의 정체를 알았음에도 그를 연인으로서 받아들여 주었고, 경쟁자였던 동생은 빈센트의 의지와 능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빈센트가 마지막으로 로켓을 타러 가기 직전 신분을 숨겨 주고 그를 응원해 주었던 유전자 검사 직원도 있지요. 인간은 이성과 과학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통제 밖의 행동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유전자 편집으로 일생을 결정하고 신분을 나누는 틀에 박힌 사회임에도 그 속의 개인들은 끊임없이 틀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그러한 타인의 몸부림에 동조합니다. 그리고 인위적인 것은 절대로, 별의 자식들이었던 우리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요.... (강요




장면 단위로 하나하나 분석해봐도 좋을 듯한 영화라 두고두고 다시 보게 될 것 같아요. 이번에는 제롬과 빈센트, 엔딩 장면을 중심으로 얘기해 봤는데, 언급하지 않은 중간중간의 포인트도 많고 다른 관계들에 대해서도 (빈센트와 아이린의 관계.. 빈센트와 동생 안톤의 관계..) 파고들 부분은 많으니까 리뷰가 길어져도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1시간 40분 정도로 요즘 개봉하는 3시간에 가까운 영화들에 비해 굉장히 압축적이지만 빠트릴 요소가 없는 알찬 영화였던 것 같아요. 왜 이제야 봤을까.. 후회하는 중..

지금까지 리뷰 쓰면서 매 영화마다 똑같이 이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영화가 많고 나는 대부분을 놓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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