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이 넘으니 갱년기 호르몬이 슬슬 기운을 뻗치기 시작했다.
잠도 못 자고 울긋불긋 오르는 홍조도 모자라서 시도 때도 없이 땀이 났다.
막내아들까지 결혼시키고 나니 허전한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늘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출퇴근하는 골목길에서 꽃집을 하나 만났다, 눈길만 주고 다녔는데 그날은 화분을 하나 사야
겠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식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어머 이쁘다~ 사장님. 이거 뭐예요.?"
"다육이라는 식물이에요. 잘 자라니까 한번 키워 보세요."
호기심에 들인 다육식물이 화분에 담겨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어느새 베란다 공간 전체를
점령해 버렸다. 색이 고와서 어느 것은 작아서, 또 따른 것은 화분이 이뻐서 지나치지 못했다.
겨울이면 얼어 죽을까 싶어 뽁뽁이까지 동원했다. 저녁에는 잘 자라고 인사하며 비닐을 말아
똘똘 감싸주고 아침이 되면 잘 잤니, 하고 인사하며 다시 열어두었다.
그야말로 애지중지 자식처럼 키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로 향한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잎이 지저분하면 하나씩 떼어주고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색이 혹시 빠지지 않았는지 물이 마른 것은 아닌지 코 박고 화분을 들여다보는 관찰이 아침 루틴이
되어버렸다.
봄이 되면 왕복 두 시간 거리의 화원을 이웃집처럼 들락거린다. 조금만 사 와야지,
아무리 마음먹어도 쉽지 않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좋은 색감의 다육이를 보면 욕심이 동한다.
배낭에 넣고, 자전거 양옆 손잡이까지 검정 봉투를 주렁주렁 걸고서야 걸음이 떼어진다.
신나는 다육이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떤 화분에 심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페달을 신나게 밟으며 하천길을 지나고 있었다.
아뿔싸, 저 멀리 자전거 한 대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자전거가 무서워 피한다는 게 그만, 하천 도랑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내 화분 어떡하면 좋아~~!"
나 아픈 것은 생각지도 않고 화분이 깨져 꽃이 다칠까 봐 걱정이 앞섰다.
창피한 마음도 개천 진창에서 일어나고서야 들었다.
마스크가 이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기웃거리는 시선을 피하느라 고개도 들지 못했다.
자전거가 곤두박질치면서 체인도 물에 빠져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내 모습에 남편이 더 놀랐다.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라며 자전거는 다시는 타지 말라고 남편은 신신당부했다.
나의 못 말리는 다육이 사랑은 3년이 넘도록 진행 중이다.
남편의 단골 선물은 언제나 다육식물이다.
운동 삼아 화원에 오가고 누구를 만나도 자식 대신 다육이 자랑에 열을 올린다.
종교도 아닌데 사랑이 전도되어 회사에까지 다육이 키우기 바람이 불었다.
공동구매도 다반사다. 부족한 사랑에도 군소리 하나 없이 잘 자란다.
제 인생 찾아 훌훌 떠나버린 자식 빈자리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보물들이다.
식물도 관심과 사랑으로 자란다.
3년이 지난 지금 애중중지 키우던 다육이는 늙고 병들었다.
나의 관심사가 어디로 바뀌었을까요?
다음 편에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