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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Dec 15. 2018

이 땅이 1년 동안 제 땅이라고요?


계약이 끝났으니 이제 누가 뭐래도 내 땅. 일 년 동안 약속된 농부의 삶. 

이런 언어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얼마만큼의 노동을 들여야 수확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유기농, 농사, 내가 키운 작물, 새싹, 열매... 이런 감성적인 느낌에 온통 휩싸여 있었던 것 같다.


계약 다음 날. 

엄마와 함께 밭을 찾아갔다. 밭을 보지도 않고 계약을 했냐고? 


맞다, 그랬다. 


땅의 컨디션이 이렇든 저렇든 무조건(!) 할 땅인데 일부러 찾아가보는 일도 수고스러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엄마의 건너건너에 아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위치도 좋고 수확도 꽤 괜찮은 것 같단다. 그 또한 어디선가 건네들은 말이라 진위여부를 밝히는 일이 여의치 않았지만 농사라는 환상에 젖어서 였을까? 고민하다간 남은 땅을 빼앗겨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있어서였을까? 아무튼 과할만큼 서둘러 계약을 했던 것 같다. 


대구 팔공산, 산자락에 위치한 텃밭은 대구 50사단 군 부대 뒤쪽에 위치에 있었다. 10평이라는 크기가 생각보다 컸는데 땅이 마사토처럼 알갱이가 굵은 모래와 물기 하나 없는 바스라지는 느낌의 흙들로 이루어져 있어 보자마자 어안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땅을 다 일궈야 한다고? 지난 겨우내 휴경지로 있었던 땅은 봄을 맞아 언 땅이 녹으면서 온갖 종류의 잡초들이 다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텃밭단지(우리 밭이 속한 단지의 이름은 느림보 텃밭이다.) 안에도 어떤 땅은 우리땅처럼 잡초가 가득이었고 또 어떤 땅엔 이미 경작을 끝내고 씨를 곱게 뿌려져 있었다. 


멍하니 밭을 바라보던 엄마는 곧 차 트렁크에서 장화와 밀짚모자, 장갑 등 경작에 필요한 장비들을 꺼내기 시자하셨다. 밭일에 무지한 나는 아쿠아슈즈를 신고 갔는데 단순히 흙이 묻으면 씻기가 편하다는 게 이유였다. 엄마는 그러다 발가락 절단난다며 내게 장화를 넘기고 목이 높은 고무신을 신으셨다. 일단은 잡초들을 호미로 골라 내는 게 일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수십 개. 저걸 어느 세월에 다 뽑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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