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bobusang Apr 07. 2023

호우시절 꽃 피네

창밖에 꽃비가 내려요 

  한 차례 봄비가 지나간 자리, 바람까지 영접해야 하는 아침이다. 딱딱할 수밖에 없는 한국어 문법 수업이 아침 시간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되뇌며 옷깃을 여민다. 중국 대학의 첫 수업은 8시부터다. 쉬는 시간에 한 SNS에서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어떤 결심>이라는 시를 만났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마지막 단락까지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내게 주어진 시간이 오늘 단 하루라면? 모든 것이 고맙고, 미안하고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물끄러미 교실 창밖을 내다봤다. 



  

  봄바람이 휘파람을 불고 간 자리에 하얗고 연분홍 꽃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내 동공과 입이 움찔한 것도 잠시, 고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선생님이라도 된 듯 소리치고 있었다. 


    “얘들아, 커튼을 걷고 창밖을 봐, 꽃비가 내려.” 


 갑작스러운 선생의 요구에 기꺼이 순응하는 어여쁜 제자들. 하지만 그런 내가 더 신기한 듯 바라보는 눈망울이 별 겯듯 반짝인다. 그 순간 내가 교실에 와서 창밖을 내다본 적도 사적인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 만족을 위한 강의에만 참 열중이었다, 그것도 무려 10여 년씩이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좀 무서웠다고 졸업 후에나 겨우 고백했던 졸업생들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교실이 1층이라 멀리서도 꽃비 내려앉은 교정 바닥이 가깝게 보였다. 하얀 양탄자, 연분홍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하다. 겹겹이 쌓인 꽃잎 무대 위에서 요정이 사뿐사뿐 파르르 발레를 하는 듯한 환상마저 들었다. 이렇게 꽃은 5분이란 짧은 시간에도 감동을, 화사한 인생의 한 찰나를 선사해 주는구나. 

 “그래도 수업은 계속하는 거로.”를 외쳤지만, 정작 내가 그 감동을 끝내 내려 놓지 못하고 수업 종료 15분 전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얘들아, 10분 시간을 줄 테니 ‘창밖에 꽃비가 내려요.’라는 주제로 시나 수필을 써 보렴. 단 한 줄이라도 괜찮아. 그래도 다섯 줄은 쓰렴. 쓴 건 사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고.” 


  한국어를 겨우 3학기 배운 학생들, 선생님의 엉뚱한 요청에 곤혹스러운 눈빛이 역력했다. 그것을 즐기는 악당의 미소. 그래서 선생 할 맛이 나는 건가? 수업 종료 5분 전, 단톡방에서는 울리는 노크 소리에 악당 배역에서 깨어났다. 

     '에고, 내가 마감 시간에 민감한 건 또 어찌 알고.'

  대 놓고 칭찬은 안 했지만, 역시 중국의 미래, 세계의 미래들임에는 틀림없다. 시간 관계로 먼저 제출한 두 편의 연분홍 연서를 대신 낭독하는 내 눈에는 벌써 감동의 눈물이 젖어 들고 있었다. 



창밖에 꽃비가 내려요.
“봄이 다시 왔다. 신기하지?”
하는 한국 드라마 대사가 떠 올라요.
혹시, 내 마음이 얼마나 설레는지 아세요?
도깨비 눈이나 다름없는 꽃비가 여기 왔어요.
우리 첫눈 오는 날 말고,  
첫 꽃비가 내리는 날 만날까요?
                                                         - 양흠(杨鑫)


요 며칠 계속 비가 왔어요.
가볍게 내리는 꽃잎이 마치 눈송이 같아요.
겨울로 다시 돌아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새가 노래를 부르고 햇살이 따뜻해요.
 나는 그제야 봄이 다시 온 걸 알았어요.
                             -황일기(黄逸琪)



    꽃잎 무대 위의 요정이 바로 너희들이었구나.

 ‘청출어람’이라더니, 너희들이 바로 나의 선생님이었구나. 

  "영원히 사랑한다, 나의 요정들." 

작가의 이전글 호우시절 꽃 피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