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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Oct 13. 2022

할머니와 순댓국

  쌀쌀한 계절, 밤이 되면 목젖을 치고 올라오는 기억이 있다. 특히 불이 꺼져 컴컴한 부엌 앞에 혼자 있는 지금, 내 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답답한 기억.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큰 집의 경제적인 이유로 할머니를 우리 집에서 모시게 된 이후로는 특히 더 그랬다. 남녀 차별주의적인, 가부장적인 전통적 사고관에 푹 담긴 할머니는 추석 명절에 바쁘게 반찬을 나르고 있던 오빠를 주저앉히고 나와 엄마에게 오빠더러 일을 시킨다고 크게 혼을 내던 분이셨다.

  구시대적인 사고관을 하나하나 반박해야 세련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나로서는 그런 할머니의 언행에 대해 참고 인내하는 효심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고, 한두 마디씩 내뱉는 말대꾸는 조손 간의 전쟁 같은 싸움을 일으켰다.

  어느 추웠던 겨울 저녁, 거실 불을 두 개 느냐, 한 개를 느냐 하는 문제로 할머니와 투닥이던 일이 크게 번져, 사소하게 쌓여있던 서러움이 폭발했다. 혐오감과 설움을 짙게 담아 '할머니는 나에게 단 한 번의 양보도 없는 마녀 같은 사람이야!'라는 고함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고, 가만히 미간을 찌푸린 채로 상황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그 순간 내 뺨을 때리셨다.

  당시의 나는 유치하게도 그것이 편을 가르는 문제라고 생각했고, 우리 가족 중에 내 편은 아무도 없다는 비합리적이고도 어리석은 소외감에 빠져 당장 짐가방에 옷을 쑤셔 넣고 가출을 해버렸다. 가출 첫날은 모텔, 둘째 날은 친구 집, 셋째 날은 다시 모텔... 그렇게 일주일을 넘게 방황하다 엄마의 연락을 받고 들어간 집에서 가족들은 묘하게 내 눈치를 보았다.

  할머니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엄마와 오빠, 심지어 아빠까지도 할머니의 말을 끊었고, 마치 할머니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듯이 굴었다. 당시의 나는 그 분위기에 승리감을 느꼈고, 내가 이겼다는 도취감마저 들었다. 할머니가 당시에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나, 집안의 기류를 느낀 것 같기도 했다. 늘 당연하게 나를 부리던 태도가 사라졌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한, 할머니와 같이 사는 내내 신경질적으로 내가 듣기 싫어했던 말이 하나 있었다.
  "현아야, 저녁밥 좀 차려라."
  저 한 문장에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느껴졌던 하대하는 느낌. 물론 할머니가 손녀에게 하대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으나, 미묘하게도 다른 느낌. 집안에 다른 가족들이 있어도 언제나 저녁 6시만 되면 할머니는 저 말을 내뱉었고, 나는 그 말을 매일 들으면서도 매일매일 밑으로 끌어내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나는 할머니의 그 말에 거의 강박증적일 정도로 무시를 하곤 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내 일에 몰두한 척을 하며 할머니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이 행동했다. 할머니는 가출 사건 이후에도 저 말만큼은 잊지 않고 매일 반복했고, 그것은 나를 정말이지 살이 떨리도록 질리게 만들었다.

  어느 날 저녁. 쌀쌀했던 날이었고, 집에 할머니와 나뿐이라 온 집에 불은 꺼진 채 내 방의 불만 켜져 있었다. 애초에 가출의 출발점이 된 그날의 싸움이 거실 불을 몇 개 켜는지에 대한 것으로 촉발되어서 그런 것인지, 할머니는 시위하듯이 거실의 불을 끄고 캄캄한 공간 속에서 귀신 같이 눈을 부릅뜨고 계셨다. 곧 저녁 먹을 때가 되었고, 어김없이 밥 차리란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귀를 닫고 내 방에서 나가지 않자,
  "현아야, 가스레인지 좀..."
  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마저도 무시했다. 할머니가 나에게 뭔가를 요구한다는 것이 불쾌했다.
한참 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먹는 소리. 뭘 혼자 드시고 계신가 짜증과 궁금증이 섞인 마음으로 부엌으로 나가본 순간,

  '아, 그 순댓국.'
  엄마가 할머니 드시라며 며칠 전 사다 놓은 그 국. 날씨가 추워 불에 데우지 않으면 다른 고깃국이 그렇듯이 국물 표면이 굳어버리는 그 국. 할머니는 그 국을, 데우지 않은 그 차갑게 굳어버린 국을 캄캄한 부엌 식탁에서 소리 없이 먹고 있었다.

  씨발 뭐 하자는 거야. 나 죄책감 유발하는 거야 뭐야. 순간적으로 성질이 뻗쳐 주먹을 쥐어 부엌 식탁등을 쾅하니 때려 켜고, 퉁명스럽게 그 국을 뺏어 개수대에 부어버리려고 했다. 뭐 이런 걸 먹고 있어 데우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국그릇을 식탁에서 말없이 치우려던 찰나,

  그때 마주친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눈에서 느껴지는 할머니의 고집.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약간의 민망함, 무안함, 당황스러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탁한 눈을 마주한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뭔지 모를 감정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고 흘렀고, 난 그 국그릇을 할머니에게 다시 넘긴 뒤 도망치듯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방문 밖에선 달그락거리며 음식을 먹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엎드려 스스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혈육에 대한 죄책감이자 그깟 국 하나 스스로 데워 먹을 줄 모르는 할머니에 대한 짜증, 의도적으로 모른척한 나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었던 것 같다.

  그 해 그 겨울이 끝나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눈물은 많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울어서 울었다. 후련하기도 했다. 할머니에게서 났던 그 곰팡이 냄새가 더 이상 집에서 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 그런데 그 순댓국.
  내 죄책감을 유발하는 순댓국.
  불 꺼진 캄캄한 부엌에서 차게 굳은 순댓국을 먹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이 왜 그렇게 생각이 나는지. 도대체 당신은 그 차갑게 식어버린 기름 덩어리의 국물을 왜 입에 집어넣고 있었는지.

  자기 때문에 내가 가출한 것을 알기에, 내 눈치를 보는 다른 가족들의 분위기를 읽었기에, 그 국을 데워달라는 소리를 못 했던 걸까? 아니면 그렇게 먹는 것으로 나에게 시위를 한 것일까?

  나는 정말 할머니가 보고 싶지 않다. 애틋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 순댓국만큼은...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 오늘같이 미치게 마음이 무거운 순간이 문득 찾아올 때면 할머니의 그 난감한 표정이 떠오르고, 매몰찼던 내 행동에 욕이 나올 정도로 후회스럽다. 할머니, 그때 밥 제대로 못 차려드려서 죄송해요. 그 국 못 데워드려서 죄송해요. 못 들은 척해서 미안해요. 그렇게 나보고 밥 차리라고 했는데, 내가 한 번을 할머니 밥을 안 차려 줬네.

  공교롭게도 장례식을 마치고, 할머니를 강원도 화천에 묻었던 날. 그날 먹은 점심이 순댓국밥이었다. 마지막까지도 할머니는 나에게 어떤 것 하나 따스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렇게 글을 써도 마음이 무겁다. 그때의 컴컴했던 부엌만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답답하게 울렁이는 이유는 다 할머니의 순대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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