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무엇인가를 감독해야 했기 때문임. 이때의 감독이라 함은 뭐 축구 감독 이런 것은 아니고 사람들을 관리 감독하는 것인데, 물론 축구 감독 야구 감독도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지만, 내가 말하려는 감독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나는 그 앞에 근엄하게 서서 그 사람들이 딴짓을 하는지 안 하는지 쳐다보는 것을 뜻함돠.
나는 좀 특수한 직업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음. 일 년에 이런 짓을 몇 번씩이나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나는 심각한 병을 하나 앓고 있음. 그것은 바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 일명 가못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미디어 중독, 독서 중독 포함임. 활동적으로 몸을 움직이든가, 몸이 가만히 있으면 보거나 읽을 거리가 반드시 있어야 함.
그런데 오늘의 이 감독 일은 모든 미디어 매체 반입이 금지되고, 책도 들고 들어갈 수 없었읍네다...
나에겐 이것이 고문이었지요. 그런데 또 고문처럼 느껴지는 한편, 내가 과연 이 두 번의 50분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기록을 해보기로 했음. 일종의 메타인지라고 할 수 있겠다.
1. 첫 번째 50분
첫 10분은 할만 함. 오늘 점심 뭐 먹지, 오늘 퇴근하면 뭐하지 생각하다보면 시간이 뚝딱 날라감.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관찰하면서 어 누구 닮았는데 누구였더라 기억을 짜내봄. 뭐 오늘 하루 금방 가겠네,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오늘 오전이 날아가니 어떻게 보면 이건 좀 평소보단 낫지 않나 착각하기도 함.
10분을 넘어서부터 손목에 찬 갤워치를 자주 들여다봄. 그러다 갑자기 시계를 내가 좀 자주 보네 하고 자기 반성하며 나의 신체에 집중함. 하나의 의식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상태를 점검함. 아침이라 조금 졸립고 배도 약간 고픈데 응가도 좀 마려운 듯함. 그리고 오른쪽 손목이 조금 뻐근함. 그러다 갑자기 똥 마려운 감각이 급박하게 느껴짐. 그렇게 한참 나 스스로에게 집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 5분밖에 안 지남.
약 15분 경과, 아까의 똥 마려움이 소강됨. 그러나 방심하면 안됨. 29년 간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건 방어전임. 엉덩이와 아랫배에 온 감각을 집중하고 동시에 어제 도대체 뭘 처먹었길래 지금 이런가 되짚어봄. 점심에 명란젓을 넣은 계란찜에 밥 한 바가지, 저녁에 두부 조림, 그리고 쿠키 두 개.... 많이 먹긴 했음. 그러다가 그 음식들에 칼로리를 넣어 내가 어제 총 섭취한 칼로리는 얼마나 되나 가늠해봄. 문득 내 몸에 미안해짐. 오늘 저녁은 단백질 쉐이크를 일찍 먹고 간만에 간헐적 단식을 하리라 결심.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제 30분 지남. 50분 중에 절반은 지났다며 안도함. 그런데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 정신이 아득해짐. 또 어떻게 20분을 버티나 암울하기까지 함. 재밌는 생각도 나지 않음. 갤워치에서 시선을 거두고 벽에 걸린 아날로그 시계를 한참 쳐다봄. 초침이 시계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나도 머릿속으로 박자를 같이 맞춤. 그렇게 박자를 맞추다가, 시계에서 잠깐 눈을 떼고 속으로 하나, 둘, 셋....열까지 세고 다시 시계 쳐다보면, 시계도 정확히 10초 지나 있음. 나의 정확한 박자 감각에 찬사를 보내며 이 짓을 네 번 정도 함. 그렇게 네 번 해도 시간은 사실상 1분 안쪽으로 가는 거임. 혼자 하는 시간 박자 맞추기 놀이에 갑자기 싫증이 나버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나무의 잎이 떨어진 것을 감상하다가,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문득 올해도 며칠 안 남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가올 미래에 잠시 두려움도 느낌.
어느새 다시 시계를 보니 놀랍게도 이제 40분 정도 지나 있음. 다시 똥 마려움. 똥과의 사투를 벌이며 이따가 화장실에 가면 누가 있을까, 과연 내가 화장실을 혼자 점유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해봄. 그리고 이때 놀랍게도 시간이 빨리 감.
45분 경과. 갑자기 즐거움. 아직 50분이 다 지난 것도 아니건만, 50분 동안 잘 버틴 내가 대견함. 시계 초침 박자 맞추기 놀이를 과감하게 60초 단위로 한 번 더 함. 물론 틀림. 내가 더 천천히 셌음. 그러나 시간이 정신적으로 빨리 흘러간 듯한 느낌에 뿌듯함을 느끼며 갤워치 시계의 초 단위에 집중함. 분명 이 워치 시간으로 57초에 종료 종이 칠 것임. 괜히 낮은 목소리로 "5분 남았습니다..."하고 알려줌
50분 끝. 세상이 아름다워 보임. 그런데 이따가 또 50분 이 지랄을 해야 하는 것에 다시 암담해짐. 진짜 가만히 있는 거 못할 짓이라며, 빨리 핸드폰 보러 가고 싶음.
2. 두 번째 50분
시작할 때부터 기분이 안 좋음. 첫 번째 50분이 끝나고 아까 조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일어서서 감독하려니 다리가 좀 아픈 것 같음. 옛날에는 두 시간을 걸어도 다리 아픈 줄을 몰랐는데 나이 들어서 그런 거 같다고 쓸데 없이 서글퍼짐. 괜히 옷 소매 만지고 손톱 쳐다보기 시전. 그리고 손등 쪽의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마디의, 감각이 거의 없는 살을 꼬집고, 꼬집어서 위로 볼록 솟은 살이 주저앉기 전에 그 부분을 윗입술로 얼른 지분거리며 묘한 주름짐을 느낌. 그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 존나 크게 남. 천둥 치듯 요란한 그 소리가 약간 민망해서 괜히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둥글게 둥글게 만져줌.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약간 스트레칭함. 시간 이 정도면 많이 흘렀겠지 싶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손목의 워치를 봤는데 놀랍게도 10분밖에 안 지남.
그러다가 내 자산이 얼마나 되나 헤아려 봄. 여기 저기 흩어진 돈을 떠올리고, 그것들을 다 더하기 시작. 이때 떨어진 주가는 고려하지 않고, 구매 시점의 금액으로 계산해야 정신 건강에 이로움. 아니 그때 7만 전자일 때 사라고 했던 사람 나와봐. 10만 전자 같이 가자고 나 꼬셨던 사람 누구냐...ㅎ 오만 전자 뒤질래. 암튼 돈 계산하다가 그래도 꽤 모았군 하고 뿌듯해 하는데, 그것이 나의 기준에서나 자그마한 뿌듯함이지, 누구에게 내세울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갑자기 또 암울함. 분명히 어제까지는 내년에 gv70 뽑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겸허하게 이 똥차를 2년 더 타기로 마음 먹음. 역시 돈. 돈 생각 하다보니까 35분 경과.
35분을 넘어, 다시 시간이 흐르지 않음. 가만히 세상의 이치와 옴(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참고), 내면의 에너지 등 온갖 잡생각들이란 잡생각은 다 하다가, 결국 노는 생각·먹는 생각으로 빠짐. 역시 호모 루덴스 이현아. 대전의 맛집을 동네별로 정리하고, 마음 속으로 맛집 1~3위 매김. 동네별 맛집 정리가 끝나면 이제 음식 종류별로 다시 순위 매겨봄.
그렇게 또 10분을 써서 45분이 지나감. 이제 끝이 보임. 다리도 안 아픔. 근데 급격하게 배고픔이 몰려옴. 갑자기 짜장면 먹고 싶음. 벽걸이 아날로그 시계와 내 갤워치를 비교하며 약간 시간이 다름을 느낌. 그러나 그래도 상관없음. 내 갤워치로 정확히 57초에 종이 칠 것이니...
50분 땡! 마음이 가벼워짐. 날아갈 것만 같음. 다 비켜 나 탈출한다.
물론 내일, 그리고 모레도 또 이 투병 생활을 해야 한다. 심심함이란 감옥 속에서 사흘 버티기... 물론 50분씩 두 번이지만, 어디 여러분들은 견디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