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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Oct 17. 2022

소떡소떡으로 느낀 아빠의 늙음

  아빠가 체했다. 퇴근하고 들어오신 저녁부터 속이 좋지 않다고 소화제를 찾더니, 결국 밤이 돼서는 구토를 하기 시작하셨다. 안방 화장실에서 혼자 고생하는 아빠의 등을 두드려주던 엄마는 따뜻한 물에 매실청을 진하게 타 주고 아빠를 진정시켰다. 집안을 울리는 구역질 소리와 갑자기 어려진 듯한 아빠의 투정 섞인 끙끙거림에 미간이 찌푸려지긴 하였으나, 평소 건강 체질이던 아빠가 이렇게 아픈 걸 보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었고 걱정되는 마음과 안쓰러운 생각이 앞서, 아빠가 잠든 후 거실에서 사과를 깎아 먹고 있을 때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 왜 그래?"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소떡소떡 하나를 빈 속에 사드셨다는데, 그게 체한 것 같아."

  몇 년 전 TV의 모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있게 사 먹어 더욱 화제가 되었던 그 소떡소떡. 어린 시절에 가족 여행을 갈 때 오빠와 내가 그걸 사 먹겠다고 할 땐, 사람도 많은데 그런 걸 줄 서서 사 먹는다고 아빠가 쿠사리를 주기도 했던 그 간식. 그 소떡소떡을 아빠도 사실은 내심 먹고 싶으셨나 보다. 매일 생각이 나진 않더라도 어쩌다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눈에 밟히는 정도는 되었나 보다. 그러나 가족끼리 어디를 갈 때는 당신의 다 큰 자녀들이 뭐 그런 걸 사 먹느냐고 눈치를 줄까봐, 그 간식에 짧은 눈길만을 주고 얼른 서둘러 지나갔으리라.

  타지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혼자 휴게소를 들리게 되자 신난 마음으로 소떡소떡 꼬챙이를 손에 들고 맛있게 소스를 묻힌 떡과 소시지를 한입 한입 먹었을 아빠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시선을 의식해 크게 즐거워하진 못했을 테지만 속으로는 과거 그 TV 프로스램에 나왔던 연예인이 알려준 소떡소떡 먹는 방법을 떠올리며 잔뜩 기대를 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휴지로 살포시 꼬치 밑부분을 감싸고, 뚝뚝 흘러내리는 소스가 옷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고개만 앞으로 내민 채, 떡과 소시지를 한 번에 입으로 쏙 밀어 넣는 순간, 싸구려 소시지와 말랑한 떡, 짭짤하고도 달콤한 소스가 입 안에서 그럴듯한 조화를 이뤄냈겠지. 마침 또 배가 고팠던 아빠는 길가에 선 채로 허겁지겁 한 꼬치를 뚝딱 해치웠겠지.

  사실 그 소떡소떡이 한참 유행한 것은 꽤 지났고,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꽤 있겠지만 휴게소에서 그것보다 맛있는 간식들을 대라고 하면 나는 다섯 개도 더 댈 수 있다. 그러나 그 유행이 지난 간식을 50대 후반의 아저씨는 드디어, 마침내, 이제서야 자유롭게 사 먹은 것이다. 유행이 한참 지나서야 맛본 그 간식은 먹음직스럽게 생긴 외양과는 달리, 속에서 큰 탈을 냈고 아빠는 그렇게 한참을 아팠다.

  아빠의 아픔과 그 구역질은 뒤늦게 체험한 유행에 대한 부작용이었을까. 남들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사는 데 바빠 유행을 따라가지 못했던 아빠, 간신히 뒤늦게 그 유행을 따라했지만 결국 소화시키지 못해 체해버린 아빠의 모습은 나에겐 단순한 에피소드로서 지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예고 없이 나에게 찾아온 '아빠의 늙음'이었다.

  남들이 다 쓴다고 올해 초 사게 된 블루투스 이어폰. 아빠는 그 이어폰을 사용한 지 6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아직도 불편하다 말한다. 귀에서 흘러내릴 것만 같다고 불편하다고 말하면서도, 요즘 누가 줄 이어폰 쓰냐는 딸의 타박에 매일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겨 나가지만, 아직도 출근해서는 줄 이어폰을 쓴다. 달아서 한 번에 두 개 이상 먹기 어려운 마카롱을 어쩌다가 처음 맛보곤, 맛있었는지 앉은자리에서 다섯 개를 홀랑 다 드시고, 다음날 동네 슈퍼의 과자 코너에서 그 마카롱을 한참 찾던 아빠. 촌스러운 아빠의 그 모습들도, 이번의 소떡소떡도 다 아빠의 늙음인 것만 같아 어쩐지  안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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