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올해가 오십 일도 안 남았대.“
퇴근길에 무심결에 들은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 같다. 이제는 이른 시간임에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퇴근길을 걸어가며 손으로 숫자를 하나둘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여덟, 아홉. 내가 지나온 날이 얼마인지 궁금해 가끔 셈을 셀 때마다 한 손으로 끝나기 일쑤였던 손가락은 어느새 두 손을 다 쓰고도 한 손가락만 남아 있었다. 어디 하나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해 모든 게 낯설었던 삼월부터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십이월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겨울은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니까 우리는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늦가을에 헤어져 초여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의 말이 거짓은 아닌지 겨우 여섯 시인데도 하늘에는 금세 어둠이 드리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하늘이 나를 잠재우려 드는 기분이 들었다. 때 이른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쌀쌀한 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하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두터운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얇은 셔츠를 입고 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 날씨에 그런 옷을 입으면 감기에 걸려 골골 앓을 게 분명했다.
고단한 하루에 잠깐 음료를 사러 들어간 카페 안에서는 큰 트리가 카페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날씨에 맞지 않는 음료를 시키고 덜 갈린 채 서걱거리는 얼음을 씹으며 트리를 바라보다 등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준비도 없이 많은 게 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계절은 왜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빠르게 바뀌는 것이며, 연말의 몽글거리고 복작이는 분위기를 좋아했는데 다시 마주한 계절은 왜 쓸쓸한 느낌이 드는 걸까. 십이월을 앞두고 있으면서 한 해를 잘 버텨 왔다는 후련함 드는 동시에 변하는 것들에 대해 이질감이 든다.
돌이켜 보면 나의 거주지, 주변 인물, 직장, 학교••• 올해 너무나 많은 게 바뀌었다. 이제야 막 사회 속으로 첫 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인 나는 그 속에서 수많은 고민들을 하며 홀로 답을 찾아갔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낯설었던 것들이 익숙해지고 가늘었던 것들은 점차 두터워졌지만 문득 내 안과 밖에서는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여러 경험들을 통해 성장을 불러온 한 해였지만 계절의 단순한 변화에도 드러난 이 미묘한 마음은 나를 상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나는 사실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인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내가 너무 훌쩍 자라 버렸다. 이런 내가 기특하면서도 어떤 날은 이러한 변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날이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도 이런 기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