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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봄 Mar 22. 2023

영화제 자원봉사자의 하루

2022년 가을밤의 기록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익숙한 천장을 보고 있는 지금, 내게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게 된다. 영화제 하루 전날, 설렘과 불안에 잠 못 이뤘던 밤이 무색하게 다채로운 하루를 보내고 온 날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영화제 기록팀으로 참여해 일을 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몸을 움직이고 글을 쓰는 일이 내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관객들이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애정이 깃들어 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낼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야를 경험하고 돌아온 나는 밤이 깊은 시간에도 여운에 잠겨 하루를 가만히 곱씹는 중이다.


내가 참여한 부산평화영화제는 다른 여타 영화제와 비교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포근함과 정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있는 요즘 세상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눈맞춤을, 마음을 덥혀 주는 온기를 주고받았다. 기계를 통해 영수증 티켓이 발권되는 요즈음과는 달리 직접 디자인한 티켓에 귀여운 도장을 찍어 발권하는 건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무엇 하나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지만, 영화를 보러 오는 이들에게 따뜻한 기억을 안겨 주고자 시간을 내어 정성을 들인다. 티켓을 발권해 주며 반갑게 건네는 인사는 영화를 기분 좋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첫 걸음이다.


영화를 통해 평화의 가치를 나누고자 개최된 이 영화제 안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직책을 가지고 모여 영화제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내가 맡은 일은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관객이 나누는 대화를 글로 풀어 기록하는 일이었다. 영화는 끝이 나도 글은 오래도록 남아 순간을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나는 발화자의 의도에 벗어나지 않게 섬세하게 대화를 들여다보고, 나만의 언어로 호흡이 긴 문장들을 정리해 기록한다. 이렇게 정리된 기록은 힘을 가진다. 영화제의 여운을 곱씹는 이들에게, 상영된 영화가 궁금한 이들에게 이 기록이 기쁨으로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글을 적는 순간에도 정성을 들인다.


피곤한 줄도 모른 채 바쁘지만 기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날은 어느새 저물어 지나온 하루를 곱씹어 보게 된다. 사람들의 열정과 정성이 녹아 내린 이곳에서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영화제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모든 게 어우러진 가운데 그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오늘은 삶 속에서 여러 번 상기하고 싶은 날이었다.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그 경험이 내가 좋아하는 일과 맞아떨어질 때 이보다 더 값진 일은 없었다. 경험의 가치를 믿는 나에게 오늘의 기억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글과 영화,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했던 하루는 내게 설렘과 충만함을 안겨 주었고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이 밤은 너무나 소중해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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