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103
벽돌시리즈 백 삼번째
자기 딴에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진화론이나 생물학을, 관련 서적을 언급하며 인간사회도 결국 치열한 정글 무대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이야기가 확장되면 결국 개개인의 운명론까지 언급이 되는데 치열한 삶에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되거나 사라진다는 것을 줄곧 이야기한다. 관점의 차이는 다양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강한 자가 살아남는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 나오는 적자생존이란 단어들을 잘 사용하는데 단어만 잘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있다. 강한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흘러가 어설프게 알면 정말 위험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적자생존은 말 그대로 적절한 존재만이 생존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즉슨 자연환경에 적응한 개체들이 생존과 생물체의 기본 목적인 번식에도 유리함을 간단히 말하는 것이다.
비슷한 단어로 약육강식이 나와서 두 단어가 합쳐지면 적자생존이 다르게 해석될 순 있긴 하다. 하지만 약육강식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자면 약한 것은 잡아먹히고 강한 것은 잡아먹는 것, 말 그대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사회에 이 키워드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 위에 군림한다는 말이 성립이 되기에는 적자생존이라는 단어 앞에선 결국 "힘"이란 것도 인간사회에서는 너무나 다양한 정의의 "힘"이 존재한다.
오히려 나는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바퀴벌레나 핵폭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곰벌레등과 같은 것을 보면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한 존재들이 허우대만 멀쩡한 사자나 호랑이랑 비교하면 물리적인 게임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생존에 유리한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자기만의 무기가 있다면 환경에서 이겨낼 수 있음에 일반적인 염세적 시각 말고 나는 되레 희망을 얻는다.
호랑이나 사자가 정글에서 살기 힘들어 재규어가 왕이 되듯 마찬가지로 극한 지방에서는 곰벌레가 왕이다. 인간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괴롭혀온 해충과 해수들을 보노라면 그들의 생존력에 경이를 표할 정도다. 인간의 관점을 뛰어넘어 환경에서 보노라면 그들은 이미 승리자다. 매머드와 검치호가 아무리 활개를 치고 다녀도 사냥당해 멸종했을 때 그들은 계속 살아남아 오늘날에도 우리와 함께한다.
자연환경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짱세고 아주 멋진 육식 동물들이 사바나에서 활개를 치는 것을 보며 인간사회와 개인이 처한 위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환경과 능력은 다양하다. 더 나아가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사상에 경도되어 염세적이거나 운명론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사실처럼 이야기 한다. 마냥 가벼운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게 농담 따먹기 같은 이야기같아도 어떻게든 과학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던 지난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러 시도들이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사회진화론이나 우생학이나 나치즘, 극단적 민족의식 같은 경우들 말이다.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한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개개인의 사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잡동사니 같은 생각들이 당시에는 과학으로 포장되려 하고 대중을 현혹시킨 것을 보면 어떤 현상을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혹은 세상을 규정하려는 정의는 더더욱 신중해져야 함을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배운다. 그래도 언제나 수요 있는 곳에 공급 있다고, 심각한 운명론과 결정론적인 관점 또한 결국 스스로에게 멍에를 씌우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결정론적 입장이 자기 삶에 닥쳐오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이미 정해진 노선이라 안정감을 가진다고 하면 할 말은 없을 것이나 참 오묘한 게 현재 위치가 불만족스럽다면 자기 자신이 결국 이렇게 살아가다 끝날 것이라 그 어떠한 도전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굉장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반대로 자기가 조금 잘 나간다 싶으면 이 역시 적자생존 약육강식에 비추어 자기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들을 갈구고 차별하며 세상의 진리라며 당연시 여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느니 나는 차라리 바퀴벌레가 되어 살아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