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싸운대요? 2부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39

by 포텐조

인문편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삼십 구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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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창교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났다. 632년에. 그는 초창기엔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메카를 정복하고 정치와 종교와 군사 지도자로써 성공한 채 여생을 마무리 했다. 이제 그러면 후계자는? 무함마드가 확실하게 누가 해라! 라고 정하진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수니와 시아의 오랜 갈등의 씨앗이 심겨졌다 볼 수 있다.



1280px-Brooklyn_Museum_-_Battle_of_Karbala_-_Abbas_Al-Musavi_-_cropped.jpg 카르발라 참극

수니파에서 후계자는 움마 이슬람 공동체 안에서 후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보았고 일부 사람들(그때 당시엔 시아파라는 정체성보다는 알리 지지자들)이 사위였던 알리 탈리브가 무함마드의 신성성을 간직한 진정한 후계자이며 무함마드가 말만 안했지 사실상 그에게 계승했다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후계자 논쟁의 시작점인데, 656년 알리 탈리브가 4대 칼리프(후계자이자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되었지만 암살을 당했다. 곧 내전이 발발했으나 기존 세력인 우마이야 왕조가 이를 정리하고 이슬람 세계를 통치하게 된다.


이후 알리의 아들 "후세인 알리"가 우마이야 왕조에 다시 항거하면서 지지자들은 그를 옹립하려다가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대다수가 일방적인 참살을 당한다. 카르발라 참극 사건은 시아파에겐 순교의 참 역사, 수니와 다른 정체성을 확립한 중요한 날로써 오늘날까지 기린다. 수니파가 시아파를 탄압한 프레임으로 인식하여 시아파에선 내부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고 서로 간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Caliphate_750.jpg 당시 포르투갈까지 점령했던 우마이야 칼리프 왕조

후계자 논쟁, 알리의 암살과 알리의 아들 후세인 알리까지 살해 당하면서 무함마드 이후 알리의 혈통만이 적법한 후계자로 여겼던 지지자들은 시아파가 되었고 움마 공동체에서 "선출된" 자만이 후계자이자 칼리프라고 인정했던 수니파는 공동체가 돌아가는 내부 구조도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흔히 개신교는 목사, 가톨릭은 신부라고 하듯 이슬람은 이맘이라는 직책이 재미있게도 개신교와 가톨릭처럼 수니와 시아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수니가 바라보는 이맘은 종교 예배의 사회자, 권위는 있지만 절대적이지 않은 이슬람 선생님과 같다면 시아가 바라보는 이맘은 신이 선택한 리더이자 무함마드 가의 후손, 움마를 이끄는 지도자등의 강력한 권위를 보유한 성직자다. 그래서 수니 이맘은 목사, 시아 이맘은 신부와 같은 비슷한 듯 다른 오묘한 포지션으로 보면 이해가 좀 더 쉽다. 시아파의 이맘은 워낙 권위가 높다 못해 절대적이다 보니 어떤 공동체는 그들을 무오류성의 인간들이라 칭송하기도 한다. 이맘이란 호칭을 남발하지 않는다(이란 12이맘파).


막간의 첨언을 하자면 이란의 호메이니와 하메네이는 이맘이 아니였다. 그들은 이슬람 율법학자로써 12번째 이맘이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공백을 바로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이맘이자 구세주가 오시기까지 대리 통치를 한다는 개념이 바로 이란의 이맘과 율법학자의 차이라 할 수 있겠다.



939화 오늘의 해석 : 수니는 주류, 시아는 비주류의 역사. 시아에겐 이맘은 무함마드의 후손이어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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