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스데이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24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이십 사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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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10월 14일. 62년전의 냉전 속 가을 하늘은 아늑하지 않았다. 모두 다 같이 파멸의 날(Doomsday) 직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찰기가 쿠바를 훑었다. 곧 그것이 사실임이 밝혀진 순간. 지구 상에서 가장 위험했던 사건 중 하나인 쿠바 미사일 사태가 시작되었다. 정황 상으로만 미국은 소련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고도의 눈치싸움으로만 파악하고 있었을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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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백악관, 의회로 보고서가 올라간다. 쿠바에 설치될 소련 미사일의 사정거리에 관한 내용이였다. 보고서를 펼치자마자 다 같이 패닉에 휩싸였다. 절대불침이라 생각하던 자국의 영토가 붉은 원의 사정거리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맞닥뜨린 멸망의 적신호 앞에서 케네디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장관, 참모 모두 모여 이 사태를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 했다.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쪽은 쿠바를 지금 당장 날려버려야 한다 주장했고 조금 더 신중한 주장을 펼치던 이들은 좀 더 지켜보자라는 쪽에서부터 국지적 공습까지 여러 대안들을 제시했다. 케네디는 맥나마라 국방부 장관을 대표로 한 보다 신중한 접근으로 쿠바의 전면 해상봉쇄를 택했다. 쿠바에 접근하는 모든 선박들을 샅샅이 조사하고 만에 하나 미사일에 ㅁ이라도 비슷한 게 나와 저항이라도 하다간 바로 격침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흐루쇼프는 미국이 눈엣가시같은 터키에 미사일을 설치해 자기네 철의 장막을 가까이 노리고 있었던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또한 서방에 알려진 소련의 위상과 달리 실질적으로 군사적 우위가 미국에 비해 뒤처져 있었으므로 이를 만회할 치명타가 간절히 필요했다. 플로리다에서 약 150킬로 떨어진 쿠바에서 미사일을 쏘면 유럽에서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으므로 아주 화끈한 선택이였고 추후 미국을 쿠바로부터 역 고립시켜 남미쪽으로 공산세력을 확장할 의중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이 전 세계 국가에 하나 둘 씩 알려지자마자 추상적이던 냉전이 갑자기 턱 밑 칼날처럼 모든 이들에게 종말을 체감하게 했다. 핵전쟁이 일어나리란 불안이 커지고 있었다. 특히 미국 국민들은 가게에 달려가 통조림과 식수를 사기 위한 사재기 현상도 일어났다. 주유소는 줄이 늘어져 있었고 대피소에 대한 관심과 아예 만들려는 사람들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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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명의 육군과 해병대가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집합 명령이 떨어져 대기 상태에 있었다. 전투기와 폭격기를 포함한 수백대의 공군기들이 대기 상태에 있었다. 해군도 항공모함과 구축함등 60척이 동원되어 쿠바의 봉쇄선에서 눈에 불을 켠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일 무시무시한 건 지하와 지상의 미사일 기지에서 잠들어 있었던 핵미사일들이 최고 경계 태세로 대기 상태에 놓여있었다. 금방이라도 날아가서 파멸시킬 준비로. 데프콘 1이 핵전쟁이였고 그 아래 단계가 데프콘 2, 즉 데프콘 2 상태였다.


검은 토요일이라고 불리는 27일에, 알래스카에서 출발한 미 정찰기가 항로를 실수로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소련도 마찬가지로 미군과 똑같이 즉각대응으로 벼르고 있었던 찰나 이런 사건이 벌어졌고 쿠바 상공에서도 정찰기가 쿠바에서 격추되어 소련 지휘관들의 자체적 판단으로 핵어뢰와 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었던 잠수함 사건도 이 무렵의 일이였다.


28일에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공군방공사령부(북미 영토의 상공을 보호)에서 플로리다에서 핵공격을 당했다는 경보가 닥쳐왔다. 난리난 사령부 내 군인들이 곧바로 보복 핵공격이냐 물어볼 찰나에 플로리다쪽에서 이상이 없다는 연락이 와서 알고보니 기지 내 프로그램의 오작동이였던 가슴 서늘한 상황도 벌어졌었다. 근 한달동안 핵쏘네 마네 하다가 흐루쇼프가 더이상 안되겠다 판단했는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쿠바내 미사일 철수를 알렸다.


재미난 점은 당시 양국간의 직통전화가 없었고 연락을 취한다고 해도 보안상의 문제로 전달하는 데만 수 시간이 걸렸던 지라 전 세계가 곧 바로 알수 있게 라디오로 때려버렸다.

이 날의 기억은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틀림없었다. 우발적,실수로 일어날 뻔한 핵전쟁의 위험성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건이기도 했으며 역사에는 만약이라는게 있을 수 없겠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핵전쟁이 일어났다면 세계는 한번도 맞이해보지 못한 파멸을 경험했을 것이다. 캐네디가 군부내 강경파가 크게 목소리를 외칠때 참아가면서 신중하게 대처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참고로 이때 미,소 양국간의 핵무기 갯수로만 따지면 도합 35000~40000개로 추정한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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