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30화 / 3장 여정의 시작
장편소설 빛의 여정 30화 / 3장 여정의 시작
신전의 앞마당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반쯤 송장이 되어버린 고행자들이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 횃불로 몸을 지지는 의식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 도착한 로이딘 일행은 타는 냄새가 무엇인가 했더니 이들의 살타는 냄새임을 알자마자 헛구역질을 했다. 횃불을 든 한 남자가 다가와서 참회의 의식에 동참 할 생각이 없냐는 계속된 질문에 로이딘 일행은 완강히 거부했다. 씨름을 하던 남자는 포기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 켠에서는 방금 전에 목격 한 불경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일부가 무릎이 꿇리고 심판을 받는 듯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들의 판결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누구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신전 앞마당에서 그보다 눈에 띄는 건 광장에서 보았던 정체모를 교단의 사람들이 과거의 피데라의 신전이였던 이곳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듯 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로이딘은 신전에 들어갈 지 말 지 심히 고민이 되었다. 여기서도 괴이한 광경을 보고 있는데 안에 들어가면 무슨 험한 꼴을 보게 될지 염려했기 때문이다. 시테온은 침을 뱉어냈다. 그러면서 로이딘에게 말을 했다.
"여기서 돌아가면 이곳에 온 의미가 없잖아, 놀러온 것도 아니고 버텨내자고"
깊은 한숨을 내 쉰 로이딘은 이곳에 도착한 자신에게 피데라가 어서 빨리 어떤 형태로든 나타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들어선 광기의 신전 내부에선 더더욱 그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마당에서의 자체적인 불고문은 저절로 신전 안쪽에서의 살육 현장을 상상케 했으나 다행인지 무엇인지 모를 요상한 행사와 의식이 대신 진행되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화려하게 꾸민 신전의 기둥과 함께 정 중앙부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전의 것으로 보이는 돌로 된 좌석들에도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서 대기를 하는 모양인지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행이 앞으로 나아가자, 사람들 사이 사이로 동그랗게 둘러싼 군중 너머 황금색 망토와 가운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황금색 끈으로 묶인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가루를 무릎 꿇은 사내에게 먹이고 있었다. 옆에서 보조를 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과 사람들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그 정체모를 교단의 사람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허름하고 초췌했지만 유일하게 황금색 옷을 입은 남자만은 어디서 그리 잘도 먹었는 지 반질반질한 피부를 옷 색깔의 빛을 받아 자랑하고 있는 듯 했다. 로이딘 일행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틈새로 끼어들었다. 신전 안쪽은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고 깨끗했으며 최근에 공사를 했는지 매끄러운 대리석 기둥(실제론 지붕을 떠받들진 않은 장식 기둥)들이 신전 중앙부를 둘러싸며 황금 옷을 입은 사람 뒤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뒤쪽으론 단상과 함께 심하게 깎여진 신전의 일부이자 돌출된 벽이기도 한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깊이 파헤진 자리에는 황금 옥좌가 있었다.
분명 깎여나간 바위엔 피데라의 조각상이 있었을 확률이 높고 도려낸 자리에는 번쩍 거리는 옥좌가 대신 하고 있는 것이라는 시테온의 작은 귀띔이 들려왔다. 로이딘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루네는 입을 다문 채 의식을 쳐다보았다. 단상 위에 있던 몇몇 사제로 보이는 인물 중 한 명이 연단에 올라서며 분위기를 돋구었다.
"자 여러분! 만왕의 스승이자, 하늘의 지도자, 다시 오신 아보와 피데라의 화신, 살아있는 이그네움!, 치유의 영혼께서 기적을 베풀고 계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곳곳에서 보냈다. 잠시 후 소리가 잦아들자 그는 장 내의 사람들에게 제자리로 돌아가 앉으라 말했다. 다시 한번 황금 색 옷을 입은 사람을 바라보며 두 손 높이 쳐들며 소개했다. 정체 모를 가루를 받아먹던 사람은 기쁜 미소를 지으며 허리 굽혀 절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한번 기뻐 하십시오! 형제 자매들이여!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친히 오셨기에 감히 소개합니다! 그 이름은 최후의 승리자, 물러스!"
"물러스! 물러스! 물러스!" 사람들은 황금 색 옷의 남자의 이름을 외쳐댔다.
환호성에 익숙해 보이는 교주 물러스는 단상에 오르고 연단에 올라 소개하던 사제와 자리를 바꿨다. 소리와 박수가 그칠 줄 모르자, 손바닥을 아래로 한 채 이제 그만하라고 요구 했다. 소란이 진정되자 그의 입이 열렸다.
"에, 그래요. 치유의 신전에서 말이죠. 여러분에게, 축복을 베풀었으니 기쁜 하루네요~ 여기 본인은 말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요상한 연설. 다들 눈 빛이 초롱초롱 빛나보였다. 마지못해 앉아있는 로이딘과 시테온은 눈에서 불이라도 나올 것 같은 루네를 보면서 그 원수가 바로 저 자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여기 서 있는 본인은 말이죠? 하루에 천계와 지상을 234번 이상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게 무슨 이유인줄 아십니까? 바로 여러분을 치유하기 위해서 저의 거처를 잠시 다녀오는 겁니다. 여러분을 위해 치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정신이 아득해지는 반복되고 늘어지는 주장과 쏟아지는 박수, 헛소리에 익숙한 사제들이 지어보이는 미소. 여기가 어딘지를 잠시 잊어버리려던 어느 순간이였을까? 갑자기 나이든 남자가 로이딘 일행의 좌석으로 다가오더니 군중 속에서 허리를 숙이며 로이딘에게 말을 걸었다. 그도 연단위에 올라선 사제들의 옷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로이딘은 아까 전의 경비병의 부름과 같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남자는 로이딘의 어깨를 붙잡으며 진정시키더니 말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시오? 여기는 자네들이 있을 곳이 아니야. 나를 따라오시오. 안내해주겠소."
로이딘과 시테온은 어안이 벙벙했고 루네는 바짝 경계하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남자가 조용히 다시 재촉했다.
"여기서 설명하다간 날 밤 샐 터이니 어서 갑시다. 걱정마시게. 나는 이들과 함께하지 않소"
일어난 4명이 허리를 살짝 숙이며 신전 안을 빠져나왔다. 좌석을 살피던 경비병은 으레 있는 일인냥 그들을 내버려두었다.
로이딘 일행을 데리고 나온 남자는 고행자들의 의식과 불경한 자들을 향한 심판을 뒤로 한 채 앞마당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언덕을 내려갔다. 따라가는 로이딘 일행은 신전 밖의 공기가 새삼 신선했고, 신전을 빠져나와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를 따라 시끄러운 고성방가의 광장을 지나치며 헤르논의 청사가 있는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잠시 후 중간에서 골목으로 꺾으며 큰 길을 가로질러 나갔다. 이 과정에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던 로이딘은 그가 서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를 따라 어느 주택가에 도달했고 남자의 집으로 보이는 다소 크기가 아담한 주택 앞에 4명이 서게되었다.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주변을 다시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함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자신의 집 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루네가 문을 닫았다. 현관에 들어선 그들에게 얼마나 급했는지 오는 내내 조용했던 그가 말을 황급히 꺼냈다.
"반갑네, 소개가 늦었어. 내 이름은 베일런! 지금은 저 망할 "황금 치유"에 소속된 하급 사제이자, 방금 전에 보았던 과거 피데라의 신전 주임 사제였네"
로이딘의 눈동자가 커졌다. 시테온은 재미난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루네는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뭘 그리 놀라나? 목숨 하나 아끼자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 내가 참회하고 싶네만, 일단 앉게!"
3장 끝, 2권 그리고 31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이번주 토요일에 연재 될 빛의 여정 2권도 찾아 뵐 생각으로 기대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