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29화 / 3장 여정의 시작
장편소설 빛의 여정 29화 / 3장 여정의 시작
피데인티 코차! 언제 어디서나 나를 반겨주는 도시, 서문으로 들어가면 "벼락 맞은" 술 집엔 언제나 함께 할 동료들이 있었지. 처음 만나도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곳 말이야! - 베일런의 이야기 중에서"
마침내 헤르논에 다다른 로이딘 일행은 성문 앞의 노쇠한 경비병들을 지나쳤다. 언제 어디서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왕래했기 때문에 헤르논 입구는 상황이 어떻든 예나 지금이나 경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원한 추위가 찾아오면서 직격타를 맞은 도시의 성벽은 반쯤 허물어진 채로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둬도 죽어가는 도시를 누가 욕심 내 건드리겠냐만은. 들어온 지 얼마 안된 로이딘 일행에게 달라 붙는 거지들과 노숙자들이 한푼 달라며 구걸했다. 로이딘 일행은 그 지점을 벗어나기 위해 속도를 높였고 점점 도시 중앙부로 다가갈수록 "그나마 도시다운" 풍경이 드러나고 있었다.
지나치는 빈민가와 일반 주택가는 이미 허름해질 대로 허름해져 지붕이나 담벼락 보수는 꿈도 못 꿀 정도로 다들 가난해진 살림살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그네움이 부족해질 때 쯤이면 도시에서 땔깜이란 땔깜은 크리네스처럼 몽땅 거두어서 불을 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구운 벽돌 혹은 돌벽으로 지어진 주택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소유였기에 오히려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져만 갔다. 벌목하고 지어진 평민의 집들은 그대로 도시의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한 재료로 직행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의 방침에 따라 순순히 따르면 공동 숙소에서 살아갈 수 있었으나, 억울한 마음에 저항이라도 한다면 수용소로 들어가는 2가지의 선택권이 있었다.
"처참하군"
시테온이 입을 열었다. 그는 아나티리캄이 이보단 사정이 낫다며 외부 구역의 몰골을 보며 안타까워 했다. 손에 꼽혔던 무역 도시, 문화 도시의 몰락. 어쩌면 생존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버린 대륙에서 도시가 가지고 있던 자랑거리들은 이미 뒷 전으로 물러난 상태였으니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도시란 자체 식량 수급이 어려운 나머지 인근 마을 그리고 평소처럼 무역을 통해 해결을 해야 했으나, 마을들이 해체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밭을 일굴 사람들이 부족해진 토지는 얼어붙어 갔기에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를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아이가 길거리에서 주저 앉아 엉엉 울고 있었는 데, 깡 말라 한 끼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아이를 도와주고 싶어도 좀만 더 넘어가면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정처없이 돌아다니고 있어 난감하고 씁쓸했다.
외부의 거주민 구역에서 내부 구역으로 넘어갈 때 쯤에 로이딘 일행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도개교는 그들의 구역으로 철저히 분리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의 경비병은 좀 더 진지하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군기가 잡힌 채 로이딘 일행을 멈춰 세우며 무슨 일로 오게 되었는 지 물었다.
"방랑객들입니다, 신전을 들러 마음을 정돈하고자 합니다"
로이딘이 답했다. 경비병은 빤히 로이딘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에 하나 소란이라도 일으킨다면 감수해야 할거요"
로이딘이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경비병은 살짝 신경을 긁었지만 반응이 없자 시큰둥 해 하며 손짓으로 넘어가라 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로이딘 일행이 경비병을 지나쳐 넘어가자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경비병이 소리쳤다.
부르는 소리에 잘못한 것도 없는 데 긴장을 하게 된 로이딘이 뒤를 돌아보았다.
"신전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네, 당신들은 순례자들로 보이는 데 쓸데없이 광장과 신전에서 종교 문제로 얽히다간 목숨의 문제로 넘어가니까 주의들 하게"
조언에 감사를 표한 뒤에 로이딘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갈길을 갔다.
"아보때문인가? 아니면 루네가 말했던 그 사이비? 그것 때문에?"
시테온이 물었다.
"전부 다 겠지"
로이딘이 답했다.
벽돌과 돌로 마련된 주택가는 조용하고 한산했다. 쥐죽은 듯이 조용한 채로 외부구역과는 엄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몽땅 광장시장으로 몰려갔는지 점차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주변에 걸어다니는 사람, 마차는 몇 없었다. 몇몇 경비대들이 오와 열을 정비한 채 순찰을 돌고 있을 뿐이었다. 바닥의 돌 벽돌이 말 발굽으로 기분좋은 마찰음을 내었다. 깃대와 함께 서서히 공간이 넓어지며 광장이 보였다. 로이딘 일행이 말을 탄 채로 바라보니 손을 흔들며 외치는 사람이 보였는 데 키가 굉장히 커 보였다. 얼마 안가서 보니 상자를 밑에 받친 채로 올라가 고래고래 소리치며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그! 네! 움!. 종말의 때가 왔으니 하늘의 구원을 이그네움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시테온은 루네의 눈치를 살폈다. 루네는 별 반응이 없었고 표정을 숨기려는 듯 했다. 배려라도 할 모양인지 루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용히 있을거야 일이 다 끝나기 전까진."
조건 조항을 단 루네를 걱정하는 시테온이 물었다.
"그래서 끝나면 죽여버리려고?"
"모르지 그건? 봐서."
루네가 냉담하게 받아쳤다.
그런데 그 인간이 아닐 수도 있었다. 또한 루네가 말한 사람이 맞는 지도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사람들이 나무 상자를 두고 올라가 똑같이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판의 날! 후회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그네움의 치료자를 통해 준비하십시오"
시테온이 사람 많은 곳에서 돌아다니며 외쳐대는 자들을 보며 소감을 말했다.
"대놓고 활보할 정도면 그냥 내버려두는 거야? 아니면 시장이 신도라도 된 모양인가?"
광장 넘어서 동쪽으로 살짝 언덕진 곳 위에 헤르논의 신전이 보였다. 그곳 근처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고 외치는 소리도 동일하게 들렸다. 헤르논의 신전은 분명 피데라를 주신으로 모셔놓았을 테지만 꼴을 보아하니 신전 안에 무언가 다른 게 놓여져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광장에서는 소리를 즐기든, 무시하든 사람들이 악단의 공연을 구경하거나 길거리 상인에게 물건을 흥정하는 등의 모습들이 보였다. 정 중앙부에는 거대한 불이 솟구쳐 타오르고 있었고 따듯하게 주변을 덥히고 있었다. 주위로는 경비병들이 불을 보호하고 있었다. 저 불 또한 이그네움으로 타오르고 있을 게 분명하겠지. 로이딘은 생각했다. 열기와, 뿜어내는 빛을 보노라면.
로이딘 일행은 광장의 인파를 헤집고 신전 쪽으로 향해 나아갔다. 점차 올라가면서 도시의 풍경이 외부와 내부과 대비되는 것이 인상깊었다. 북쪽으로는 화려한 청사가 보였고 주택하나가 동 떨어진 채로 삼엄한 경비로 에워쌓인 채 보였다. 그들은 추측컨대 시장의 거처라 생각했다. 신전 위에서 경비병들과 함께 사람들이 손이 묶여진 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드러날 정도의 허름한 옷으로 아무것도 신지 아니하고 걸어왔다. 그리고 그들 목에는 "불경죄"가 쓰인 나무판이 걸려 있었다.
30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