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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Nov 09. 2023

작은 벽돌 또 하나 얹으며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84

벽돌시리즈 팔십 사 번째


라디오 방송을 출연하고 왔다. 섭외가 되어서 공동체를 소개하는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재미난 것 같다. 오오 컬투쇼로만 봤던 라디오 스튜디오! 신기해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방송국 대표님 얼굴도 만져보고 싶었지만 쫓겨날까 봐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아나운서님이 사전 연습을 하자는데 5분 만에 무사통과되어 현장투입 당했다. 10분밖에 남지 않았긴 했으나, 자리에 앉아 대본을 정리해 보며 생각도 정리했다.


역시 프로는 프로인가 보다(나 말고). 너무 또박또박 오프닝 멘트를 하셔서 나도 모르게 노래 넘기고 쉴 때 저 멘트 그대로 프로다라고 칭찬해 드렸다. 반면 나는 사건현장 25시도 아닌데 스스로 취조당하는 긴장감에 어쩌지란 생각에 쫄아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재미있었다(?) 대부분 대표랑 같이 동료가 참여하여 2인 1조 게스트로 진행하는데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라 함께하진 못하고, 나 혼자 나가서 북 치고 장구치고 잘 놀다 온 것 같다.


학교폭력과 20대 초중반 우울증을 이겨낸 것에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나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자, 극복의 차원에서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왔다. 가장 내성적이고 감정적인 INFP가 이끄는 모임이란...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사람한테 치유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본인이 한발 나가주신다면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 믿는다. 말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약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본인을 한 발 더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기에, 감정적으로 응어리져있던 것을 풀기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심각한, 중증 질환을 이야기하며 본인은 해당사항이 없다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본인 존재가 있는 한 나아질 수 있다는 것, 사실 자각한다는 것 자체가 "그게 어디냐"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나는 이야기하려고 애쓴다. 동정을 전혀 받지 않으려 한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이야기함으로 나 스스로 풀어나가고 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어제 또 나를 키워준 센터에 가서 기분도 좋을 겸 연락드려서 직원분들 음료를 돌리고 왔다. 직원분이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굳이?"라고 하길래 고향방문하듯이 추석명절 선물 가져다 드린다 생각하라고 다녀왔다. 이런 과정이 있기까지 사실 하나하나 쌓여서 될 일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처음 마음먹었던 벽돌일기 1일 차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기쁜 것도 있다. 아직은 미약할 순 있으나 혹은 이 모든 것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될 수도 있으나 현재에 감사하며 걸어가야지 괜히 걱정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공동체를 소개하며 여러 프로그램에 대해 청자를 향해 알렸지만 골자는 존중이다. 사실 내가 존중받고 싶어 만든 자리이기도 하고 나 같이 홀로 지내거나, 타지에서 오는 또래들의 협소한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존중받는 자리를 목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야기했다. 치료모임은 아니지만 가볍고 혹은 무겁기도 한 서로 간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래서 급히 마무리할 때가 부지기수이긴 하는데 그래도 만족스럽다.


여하간 이런 모임을 운영하면서 멤버들 한 분 한 분이 자주 참여는 못하더라도 계속 관심을 가져주니 잘 유지되어 가고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마무리할 즈음 이야기 했던 것이, 개인적 활동이나 단체활동이든 간에 단기간으로 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어디 조금 알려진다고 혹은 목표했던 것이 조금 성과가 나온다고 혹은 그 반대로 전혀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다고 애당초 생각했던 것을 접어버린다면 공개적으로는 신뢰성을 잃어버리는 행위요 개인적으로는 작심삼일의 연장선상이자 스스로도 자존감을 낮출 수 있는 행보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민감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뿐이다. 그래서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뭔가 중도에 포기를 하거나 엇나가면 눈치채는 것은 시간문제다.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무겁겠지만 그래도 핑계를 대며 넘어가려 할 것이고 나중에 그것이 이제는 당연한 핑계가 일상이 되어버리는, 어떻게 보면 자책의 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막말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꾸준히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공개일기를 올린 지 어느덧 84번째 글이 되어버린 지금. 공개적으로 뇌피셜인 나의 의견을 매일 올린다는 약속을 애당초 했기에 99일째 갑자기 하루 안 올리면 아무리 많이 올려도 신뢰나 진정성에 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현재 위치가 나 같이 아마추어이자 배우는 입장에서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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