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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Jan 01. 2023

엔지니어의 표상---김동주 전무님

엔지니어의 표상---김동주 전무님

2022

 

1984년. 김동주 선배님은 보령화력에 소장으로 부임하였다가 만 1년만에 본사 전무로 영전하셨

다. 그 무렵 발전소에는 고장이 하도 많아서 ‘고장’화력이라고 불리던 것을, 소장님의 세심한 지

휘로 설비를 정상화시켰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던 직원들은 언제 거기까지 찾아오셨는지 등을 

두두려주시면서 “수고 많다”고 격려해주시던 소장님을 기억한다. 우리는 신이 나서 밤샘근무도

불평없이 일했다. 


진기록을 세운 김동주 소장님

보령화력 진기록은 김동주 소장님의 아이디어와, 송재신 당시 발전부장의 지극한 열성으로 많이 수집되어 150건이 모아진 보령화력 초기의 진귀한 기록이다.

진기록35호에는 발전소 합창단 결성에 대해 적었는데, 말미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이 합창단은 김동주 소장님의 의지가 결실을 맺어 조직되었으나, 공교롭게도 김소장님의 이임인사를 위한 임시조회 때 송별의 노래 ‘등대지기’를 불러야만 했으니, 아이러니라 하겠다.


발전소 열효율 높이기

소장님은 출근하면 매일 발전소 본관을 둘러보시고, 중앙제어실 옆에 있는 효율과 사무실에 들르셔서 발전부 기술자료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뿌듯하게 여기셨다.

하루는 내게 발전소 ‘열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발전소가 고장이 줄고 자리를 잡아가니 마지막에는 결국 열효율을 높이는 일을 해야 하는 수순이었다.

“그거 뭐 다 아는 일인데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하면서 며칠 고민하다가 정식 보고서도 아니고, 작은 쪽지에 몇 가지 아이템을 적어서 드렸더니, “알았다”면서 더 말씀이 없어, 나는 참 의아하다는 마음으로 소장실을 나온 적이 있다. 

열효율을 높이는 데는, 미연탄소를 줄이고, 배기가스 온도를 내리고, 소내소비동력을 줄이는 상식으로 된 세 가지 말고 또 뭐가 있지? 왜 간단한 문제를 질문하신 거지? 

늘 그런 의문을 가지고 일했다. 그 후 수 년 아니 십 수년이 흐르면서, 500MW실기(實機)에서 ‘석탄최적연소시험’을 100여회 줄기차게 실시했고, 열효율을 높이는 것은 보일러에서의 연소행위 그 자체뿐 아니라 연관설비 운전은 물론, 발전소 설계자체에도 개선점이 많다는 것을 알아내면서, 열효율을 높이기를 위해 책도 내고, 교육강의도 많이 하였다.

이제는 발전소 열효율 높이기에 꽤 많은 지식을 축적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도, 소장님의 질문을 생각하면서, “아니야. 아직도 부족할지 몰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기서 멈추지 못한다.  

‘열효율 높이기’ 그 쪽지를 생각하면 또 웃게 된다. 

그 지시 한마디에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드리려고, 나로서는 십 몇 년이나 걸린 사실이 있다.

 

설계도면관리와 고장극복사례카드

어느 날은, 어떤 회의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회의석상에서 소장님이 전 간부들에게 무지하게 역정을 내셨다. 도면실에서 왜 모든 Revision도면을 다 보관하지 않고 버렸냐고. 문제가 생기면 그 전회 수정 도면을 봐야 왜 그렇게 설계를 변경했는지 이유를 아는 것인데…. 지금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함부로 버렸다가 혼난 사건이다. 그것은 역사를 버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소장님이 가르쳐 주신 ‘고장극복사례카드’는 그 후에 보령 3,4,5,6호기 건설 시운전 기전부장 때 내가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많은 문제들을 ‘공개-신속-기록’하여 처리했다고 자부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배울 게 무궁무진하고, 생각해야 할 게 무진장이었던, ‘발전소 일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불과 1년이라는 짧은 기간밖에 모시지 못한 것을 정말로 아쉬워하면서, “아쉬운 대로 1년만 더 모셨어도 진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한탄을 했다. 

그런 선배 앞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얕은 실력에 너무 몰라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지만, “가르쳐 주시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도 하면서, 그런데 아무리 해도 그 분의 눈높이를 못 맞춰드렸겠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해보려고, 그래서 더 잘해보려고, 많이 노력하며 살고 있다.


*2022년 현재

전무님은 하늘나라에 계신다. 생전에 후배들을 더 가르쳐 주셨어야 하는데, 그럴 제도도 기회도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 그 많은 아이디어, 그 많은 지식이 일순간 다 하늘로 가져가신 전무님의 서거가 너무 섭섭하고 아깝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룬 업적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우주의 어느 공간에 저장된다”고. 안 봤으니 ‘그 말이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또 이런 말도 들었다.

“그곳에 저장된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꺼내 쓸 수 있다”고 말이다. 정말 그러려면 엄청난 내

공이 있는 천재들이나 가능하겠지? 마치 ‘수많은 번개를 맞는 지구에서 석유를 캐내 듯 전기를 뽑아내는 일’보다도 더 어려울 것 같은데, 하아! 꼭 그렇게 해서 전무님 머리 속 지식과 지혜를 뽑고 싶지만, 지금 나의 미약한 내공으로는 그런 말은 텍도 없는 거짓말로 들린다.


 다음은 보령화력 진기록 10번에 실린 내용이다. 실감나게 하려고, 일부러 내가 직접 썼던 원본을 촬영해서 그대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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