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한 절박함

삶의 궤적을 바꾸는 데는 용기보다는 절박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by 은수

대학을 졸업할 즈음 전일제 대학원을 다니고 싶었다. 교수가 되고 연구자가 되는 거창한 꿈은 아니었고 그저 전일제 대학원생이 되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이 녹록지 않다는 이유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경제적인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학을 포기했다. 아니 정확하는 선택하지 않았다.


사회에 나가 일을 하면서 일만 했다. 어떻게든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를 극한으로 몰아치며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극심한 편두통이 몰려왔다. 아픔보다는 감각이 무뎌지던 그 느낌에 피곤과 스트레스라 생각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어김없이 아침은 오고 출근을 준비해야 했다. 한쪽 얼굴의 얼얼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쪽으로 누워 자던 영향이라 생각했다. 세수를 하고 얼굴을 보았다. 매일같이 사람을 만나 친절을 보여야 했기에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쪽 얼굴에 표정이 지어지지 않았다. 구안와사가 온 것이다.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일인 사람에게 구안와사라니. 사형선고를 받은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직통보를 받은 느낌이었다. 고통이었고 절망이었다.


내 마음속에 "이렇게 살다 보면 어쩌면 내일 아침에는 얼굴이 무너진 내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죽어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 나를 알아차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인생의 허무랄까?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한순간에 목적을 잃어버렸다. 다행히도 3주 정도의 치료를 받고 얼굴 신경은 돌아와서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구안와사가 오기 전의 나와 치료된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목표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나는 한 발짝 앞에 낭떠러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겨야 삶의 궤적을 바꿀 수 있다고 하였던가. 구안와사가 죽을병은 아니지만 직업적, 사회적인 사형선고를 받다 기사회생한 죄수였다. 삶의 궤적을 바꿀 용기라기보다는 절박함이 생겼다.

나는 그 길로 하던 사업을 접고 대학원 원서를 넣었다. 전일제 대학원생이 되기 위한 길을 걷게 되었다. 때론 용기보다 값진 절박함이 인생의 궤적을 바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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