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by 은수

사람은 누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특성이 있다. 색안경이라고 비난받기도 하고 해석이나 평론이라 추켜 세워지기도 한다. 그 둘의 차이는 대상과 독자에 대한 예절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있다는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른다. 어느 쪽이건 자신이 경험한 세상과 바람, 그리고 상상에 의해서 대상을 해석하는 게 사람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어린 시절 시골 관사에서 자란 나는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관사였으니 아버지의 직장동료 자녀들도 있었지만 나이차이가 상당해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요즘 같은 땡볕의 여름에는 소나기를 머금은 뭉게구름이 자주 일었다. 배경이 되는 푸른 하늘은 요즘의 그것과는 다른 구름과 진한 대비를 보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모습은 내게 많은 상상을 하게 했었다.

출근길에 찍은 하늘

일종의 훈련이었을까? 같은 대상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어떤 규칙성이 발견된다. 그걸 기반으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발상의 전환이 되기도 하였고, 마음이 환기되는, 마치 깨어있는 채로 꾸는 꿈같았다.


물론 이런 습관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의 표정을 보면 복합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광고 모델의 사진을 볼 때면 모델은 해맑게 웃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촬영을 힘들어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었다. 매직아이처럼 한번 보면 계속 보이는 현상이다. 힘든 표정의 모델이 광고전단에서 계속 보였다. 물론 손예진 배우 같은 일부 배우는 그런 현상이 전혀 보이지 않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 개인적인 호감과 취향차에 의한 상상이었으리라.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상사나 동료, 고객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떠오르는 이미지를 근거로 행동했더니 "섬세한 사람" 또는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해다. 공감하는 게 아니라 보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런 점을 볼 때 망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게다.


코로나 시국이 되어 가장 힘들었던 게 사실 이 부분이었다. 상대의 표정을 보기 어렵다는 것.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읽어드릴 수 없어 오히려 내 불안감이 높아졌다. 표현이 과장되어 내가 보기에도 거북할 수준이 되었었다. 좋지 않다. 그나마 최근 들어 마스크를 벗는 추세다 보니 다시 안도감이 생기고 있다.


사랑은 연필로 쓰라는 옛 가사가 있다. 텍스트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미 사귀고 있는 사람들이야 애정 담뿍 담은 글들을 각자의 피앙세에게 보내도 된다.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거나, 끝내야 하는, 감정의 급변을 일으키고 삶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일은 절대로 텍스트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 사랑의 감정, 단절의 감정의 진실성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정과 행동을 보여줘야 하니까. 물론 전문적인 제비나 꽃뱀은 탁월한 연기로 그런 표정과 습관, 행동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인간 간의 예의지 않을까? 만나주지 않는 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별을 고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인간만이 눈에 흰자위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표정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대화의 기술을 위한 진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표정은 그래서 인간에게 말 이상으로 중요한 대화의 기술, 마음의 출구가 아닌가 싶다.


오늘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이에게 어떤 표정을 보여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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