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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May 15. 2023

덴마크에서 보낸 생일

제일 길었던 생일

생일을 축하해준 한 동생이 나는 가장 긴 생일을 보내고 있는 거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말대로 한국시간에 맞춰 축하를 받고 덴마크에서는 여기 시간대로 축하를 받아 태어나서 중에 가장 긴 생일을 보냈다. 아주 멋지고 고마운 하루였다. 

사실 나에게 생일은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는 날이다. 뭔가 생일은 특별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더군다나 집에서 멀리 떠나서 보내는 생일이라 생일 전까지 정말 딱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축하해준 모든 사람들 덕에 이곳에서 정말 따뜻한 하루를 보냈다. 

나는 스스로를 곁에 두기에 그다지 적합한사 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글서글한 성격과는 거리가 아주 멀고 연락을 귀찮아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이번 생일에도 한국에서 날 잊지 않고 축하해준 친구들 한명한명이 너무 소중했다. 덴마크가 좋긴 하지만 뭔가 여기서 지내는 것도 내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돌아갈 곳에 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최고의 생일상

 덴마크에서도 정말 행복한 생일을 보냈는데 우선 한국인들의 전통에 따라서 다같이 모여 생일파티를 했다. 이곳으로 교환을 온 한국인들 사이에 어쩌다 생겨난 전통인데 생일인 사람이 있으면 한국인이 다같이 모여 한식을 해먹었다. 다들 점점 요리실력이 늘어나서 갈수록 생일상이 풍성해졌다. 

뭘 먹고싶냐고 물어봐줘서 고기라고 대답했더니 고추장삼겹살에 불고기에 감자전에 미역국까지 정말 임금님 수라상이 따로 없었다. 옆에서 덴마크 왕이 방문한 거냐고 했는데 정말 그정도라고 생각한다. 하나같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한국에서 생일을 보내도 이렇게 성대하고 정성스러운 생일상을 차리지 않는데 심지어 덴마크에서 이렇게 보낼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이라는 말이 딱 떠올랐다.

수제 생일케이크 3종

심지어 저번에 모였을 때 농담반 진담 반으로 케이크 베틀을 열기로 해서 무려 3개의 수제케이크를 받았다. 정말 만들거라는 기대는 못했는데 정말 하나같이 모두 다 엄청난 케이크였다. 웬만한 호텔 케이크보다도 훨씬 훨씬 더 예쁘고 맛있었다. 

옆 주방에서 이렇게 생일파티겸 코리안 파티를 보내고 있었는데 우리 주방 친구들이 이렇게 깜짝 케이크를 들고 와줬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케이크에 꽃까지 들고 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살면서 졸업식 이후에 처음으로 꽃도 받아봤다. 사실 이전까지는 괜히 주방 친구들을 볼때면 미묘한 거리감이 들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외형이 나와는 다르고 공유하는 문화가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교환학생을 하면서 누군가 내게 마음이 닫혀 있는것 같다고, 열어 보는게 어떻겠냐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문을 열기가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이 날을 계기로 주방 친구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를 같은 주방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그렇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주방 친구들과 한국인이 모인 파티가 되었다. 너무 좋긴 했지만 강제로 영어를 써야하다보니 힘들어하는게 보여서 살짝 미안했다. 결국 이날 새벽 4시정도까지 계속 있으면서 진이며 발렌타인이며 양주를 4병정도 비웠다. 나중에 주방 친구들이 정말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좋은 사람들 덕에 외롭지 않고 가장 성대한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의 생일은 영원히 기억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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