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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문 Sep 05. 2023

9월 4일을 교사의 날로


어떤 면에서 나는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서 비판적이다. 멈추어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원단체들이 요구하는 내용이나 교육부가 마련하는 대책들이 한 두달 사이에 급박하게 내놓는 것이라 땜질식 사후 처방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막상 제도화가 되었을 때 현장에서 잘 작동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복잡하게 마련되는 대책이 가장 심플하면서도 핵심적인 전제인 '교사는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전념한다'는 것에 기인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기서 생활지도란 정상적 생활지도를 말한다. (다른 나라의 교사가 그러하듯이)교사의 역할을 이 두가지로 못박고 그 안에서 교장, 교감, 교육청이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여전히 교사는 수많은 정책들 속에서 무엇인가를 담당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 후 급박하게 내놓은 해경해체나 안전 교육의 법제화가 당시 국민들의 감정을 잠재우고 대책이 마련되는 듯 하지만 지금보면 큰 효과가 없듯이 지금의 정책들도 그리될까 두럽다. 교권문제도 그렇고 많은 문제가 누적치의 결과일텐데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번에 해결하는 것이 가능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지금 교사들의 분노와 울부짖음에 진작에 반응했어야 할 집단들이 반응한 것은 긍정적이다. 오늘 광주의 한 학생이 교사를 때려 곧장 퇴학을 당했다는데 교장의 소신들이 진작부터 그랬었다면 자기 자녀의 이익에만 도취된 공동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종류의  학부모들이 학교를 이렇게 만만하게 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기세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눌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견해를 넘어선)다수의 교사들이 징계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내어 '멈춤의 날'에 참여하거나 이를 심정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한 것은 우리 교사들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련의 추모모임과 추모모임에서의 연설들, 공감, 연민들이 상징적으로 '멈춤의 날'로 수렴되었을 것이다. 


이 생활세계의 에너지, 공론이 촛불시위처럼 정치적 변화, 나아가 교육적 변화를 이끌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그 불확실함은 긍정적인 쪽에 추의 무게를 두고 있지는 못하다. 촛불시위조차 시민의 뜻이 왜곡되어 (당파와 아집이라는)정치적 현실로 펼쳐졌는데  하물며 정치적 기본권이 극히 제약된 교사들의 후속적 압력이 무엇이 있을까 가늠하기 힘들다. 정치적이지 않아 결집된 추모모임이지만 정치 세계의 현실은 훨씬 냉정하다.


이 에너지를 보존하고 끌어낼 수 있는 제안 하나를 해보고 싶다. 9월 4일을 교사의 날로 정하는 것이다. May day는 국가 기념일이 아니지만 노동자의 쉬는 날이다. 그 날이 노동자들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비극적 날이기 때문이다. 체계가 인정하지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날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만들지 않은 날, 존경과 사랑이 사라지고 부담이 되어버린 날인 '스승의 날' 대신에 교샤들의 슬픔과 공감과 진정한 교육권을 요구하는 날인 '교사의 날'이 우리 교사들에게 더 의미있는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년에 한 번씩 다 같이 모여 다수 학생의 행복과도 깊이 연관된 교육권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토로하고 요구할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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