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둥에서 배운다(레네 레이첼 안데르센) 독후 세미나 후기
김현진(12월 연구소 연구원, 충북고등학교 교사, 2024년 4월 13일)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
빌둥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제도를 변화하려는 시도이다.
이 속에서 중심이 아닌 한계에 몰린 자들에게 열린 길을 찾는다.”
-『Forming Humanity』 독서세미나 빌둥 그 자체 소개글-
2023년 11월부터 해를 넘긴 3월까지 한국교원대학교 장수명 교수님과 『Forming Humanity』 독서를 하며 독일 빌둥 전통을 학습해 나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해 20세기 독일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도덕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주제를 관통해 오며 발전된 빌둥의 개념은 교육으로도, 도야로도, 형성으로도 번역하기 힘든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다. 빌둥은 인간이 도덕적, 정서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자 그 결과이며, 성숙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개별 존재는 각 시대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공동체 속에서 개인의 형성이라는 빌둥의 철학은 19세기와 20세기, 급격한 사회적 변화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한 국가를 재건해 가는 덴마크와 북유럽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덴마크에서 발전해 온 빌둥을 다섯 영역(빌둥의 의미, 철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빌둥, 포크빌둥과 노르딕 포크빌둥의 관계, 빌둥과 사회의 관계, 빌둥의 미래)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12월 연구소의 첫 번째 여정은 온/오프라인을 병행하여 『빌둥에서 배운다』를 읽고 노르딕 빌둥의 개념을 확인하고,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교육에 대한 이상과 간극에 대한 문제 인식, 빌둥의 미래를 통해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현수 교수님의 안내와 오프라인에서 만난 12월 연구소 회원들이 간단한 소감 및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하고, 온라인으로 참여한 분들이 소감 및 질문,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나누는 방식으로 첫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먼저, 서현수 교수님의 안내로 노르딕 국가의 전반적인 특징을 살펴보았다. 노르딕 국가는 교육과 일상에서 통합적 접근, 실용적 접근, 보편적 가치 기반의 접근을 강조해 왔다. 실용과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는 빌둥이 삶의 근간에 작용했기 때문이라 보았다.
◎ 자율성과 통합성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각 개인이 자율성을 행사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시스템에 적응해 가는 이중적 실존에 놓이게 된다. 개인의 자유가 극단적으로 통제되었을 경우 개인의 삶은 존재하기 않게 될 것이고, 반대로 개인의 자유가 극단적으로 행사될 경우 공동체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공동체의 시스템은 각 개인이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각 개인은 공동체의 시스템에 따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고, 삶의 목적을 찾고, 성취감을 주는 일을 하며, 지속적인 의미와 기쁨을 느끼는 일에 전념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주요 장애물이 있다. 첫 번째 장애물은 우리의 내면 세계와 개인의 선택이고, 두 번째 장애물은 수많은 상황을 규정하는 외부 세계로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율성을 가진 개인임과 동시에 가족, 공동체 국가 또는 지구 전체와 같은 더 큰 어떤 것에 통합되어 잇는 존재로 볼 필요가 잇다. 우리가 공동체나 시스템에 통합된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의미할 수 있지만, 공동체나 시스템이 존재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빌둥에서 배운다』 24-25쪽
자율성과 통합성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사회는 문화적, 사회적으로 각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각 개인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시민으로 부여받은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위해 공동체(민족 혹은 국가)가 지닌 특수성을 부각시키고 우월함을 강조한다면, 이는 다른 공동체와의 괴리를 불러올 수 있다. 독일에서 공동체를 중시하며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과 특수성은 나치즘을 낳기도 하였다. 인류의 보편성과 다름을 인정하되 공동체의 공유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 아래로부터의 움직임
빌둥은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 괴테, 실러, 페스탈로치와 덴마크의 그룬트비와 콜에 이르기까지 빌둥에서는 민중 교육을 중시하였다. 특히 덴마크에서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깨어있는 민중이 중요함을 일찍이 실천하고자 했다. 특히 그룬트비와 콜의 실천적 움직임은 덴마크 포크 빌둥의 기반이 되었다. Folkehøjskole는 ‘교육은 삶을 위한 것이다’를 기본 전제로 1800년대 후반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운영되었다. 실제 삶을 기반으로 농업과 상업 등의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은 물론 언어와 역사를 깨우치며, 민중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 것이다. 인지적, 실천적(실용적), 정서적(영성) 영역이 고루 형성해 갈 수 있는 민중 교육의 장을 만들어 갔다.
이러한 영향은 덴마크의 근대 교육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콜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야 하고, 깨어나야 하고, 교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에 영혼을 담아야 하며, 가르침의 현장에는 관계가 있어야 하고, 가르치는 것은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적 노력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빌둥에서 배운다』 99쪽
아래로부터 시작된 교육의 움직임은 근대 국가 교육 또한 실용적이고 실제 삶에 기반한 교육이 되도록 영향을 주었다.
◎ 빌둥로즈
빌둥로즈는 ‘우리의 내면세계를 우리가 성장하고 번영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회와 연결하기 위한 철학(158쪽)’으로 어느 특정 사회가 얼마나 내부적으로 균형 잡혀 있고, 협력적이며 응집성이 있는지 질문하여 사회 발달 단계를 분석하는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권력을 중심으로 생산, 테크놀로지, 사실적 지식/과학, 윤리, 서사, 미학의 각 꽃잎이 균형을 이뤄갈 수 있도록 의미와 목적이 있는 발전, 깊은 교육과 이해, 지속가능한 번영의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 인간의 발달과 교육의 관계
“어느 누구도 실수하지 않고서는 배우고 성장할 수 없다.”
『빌둥에서 배운다』 178쪽
인간의 발달은 인생의 어느 특정 단계에서 이전 단계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인생의 앞 단계에서는 다음 단계의 경험과 관점과 성숙함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178쪽). 때문에 삶의 이정표가 필요한데, 심리학의 발달 과정은 경험의 법칙으로서 단계별 목표를 제시한다. 특히 15세와 18세에는 사회생활에서 팀 플레이어가 되고, 사회의 규범과 규칙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 신뢰를 형성해 간다. 덴마크 문화의 ‘fremelske’는 타인의 내면으로부터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것을 사랑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효과적인 발달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형성은 개인이 성숙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또한 우리의 교육은 관계를 넓혀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자유와 책임
우리는 흔히 자유라 하면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에 국한하여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빌둥에서 말하는 자유는 개인의 실존적 자유이다.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의 자유이자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내면의 자유다(126쪽). 성숙한 시선으로 더 멀리, 더 넓게 보며 사회를 이해하고 정서적 의무와 책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실존적 차이를 만드는 것이 양심으로 책임감은 빌둥과 함께 형성되며, 자신의 양심에 따라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빌둥과 함께 만들어 진다.
빌둥의 형성은 문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실러는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역할을 강조하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언어선 삶을 지향하려면, 기꺼이 인간다움을 위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68쪽)고 말한다. 실러가 쓴 편지에는 ‘인간은 육체적인 상태에서가 아니라 미적인 상태에서만 도덕적으로 발달할 수 있(68쪽)’으며, 독립과 자유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본능에 충실한 한 개인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성적 목적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심리학자 케건의 자아 발달 단계(자기발견-자기통합-자기통치-자기주도-자기변혁)의 자기 변혁에 해당하는 것으로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 개인이 자기 변혁에 이르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과 문화의 내재화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 예술과 영성
빌둥 철학자들은 감각과 이성이 조화롭게 통합을 이루는 예술을 인간성 형성의 핵심으로 보았다. 예술을 통해 추상적인 진리가 구체적인 표상으로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정서적 성숙의 추상적인 관념들은 예술을 통해 구체화되고, 구체화된 예술을 통해 여러 주체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서로 인정하고 긍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빌둥 철학자, 특히 괴테는 다른 문화(국가)에서 여행하고 살아보는 것이 개인 빌둥을 진화시키고 확장하는 데 매우 효과적(79쪽)이라 하였다. 다른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여정에서 사회를 인식하는 관점이 확장되고, 새로운 인식으로 자신의 문화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른 문화의 언어, 문학, 예술을 탐구하는 여정을 중시하였다. 빌둥은 자신의 첫 번째 문화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 자신의 문화와 여러 문화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포용하고 초월하는 것을 의미(80쪽)한다.
그렇다면 인지적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우리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 메타모던 교육과 빌둥
교육의 빌둥은 토착, 전근대, 근대, 포스트모던으로 초기일수록 석기 시대 두뇌의 학습 방식과 잘 어울리고, 후기로 갈수록 20세기 후반의 복잡성에 잘 어울린다(193쪽). 그렇다면 21세기의 교육과 빌둥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메타모던은 토착과 전근대, 근대, 포스트모던의 교육을 아우를 수 있는 교육을 의미한다. 한 개인이 성장해 감에 있어 구전 서사와 집단 의식이 필요한 시기가 있고,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이해할 시기가 있어야 하며, 민족 국가와 근대 경제 시스템에서 생존할 수 있는 지식을 형성하는 시기, 다양성을 인정하고 교유할 수 있는 시기가 모두 필요함을 의미한다. 다만, 교육은 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질문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199쪽)추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장미가 될 수 있도록 정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최고의 토양과 재배 환경이 되어야 하며, 정원은 자연과 경작의 의미를 모두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현재의 촘촘한 학교 제도 안에서 교사는 어떠한 틈을 만들어 내야 하는가?
◎ 나눈 이야기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실용성보다 이상적이고 선험적인 성향이 강하여, 실제 삶과 교육 현장의 영향력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안학교는 실천을 바탕으로 교육을 영위해 가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었음에도 더 넓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대안학교가 지닌 교육의 효과들이 있음에도 국가 교육에 새로운 모델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졸업장 취득이라는 제도에 얽매여 교육적인 행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적이지 않은 행위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이란 무엇이며, 교육에 대한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거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교사는 권력을 지니고 학생에게 강제성을 부여한다. 한편 교사 또한 국가 교육의 제도 안에서 강제성을 부여 받고 압박을 받는다. 학생과 교육자 사이에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고 교육다운 행위가 일어나기 위해서 현재의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학교 교육은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
세계 시민 교육과 빌둥의 차원에서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을 하기 위해 바뀌어야 할 부분들은 무엇인가?
학교의 3주체(교사, 학생, 학부모)에서 각각의 역할은 무엇이며, 다양한 입장과 갈등을 해결해 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소외된 자를 재발견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하나의 구심점 없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혼란함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 서로가 묻고, 서로가 답하다
우리나라는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제국주의와 전쟁, 급격한 산업화를 통과해 가며 혼란함을 겪고 있다. 한국형 크릭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으로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 혹은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는 의문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노르딕 빌둥에서 찾아보았다.
노르딕 국가들은 혼란 속에서 빌둥 철학을 구심점으로 사회의 안정을 찾아갔다. 성숙한 사회로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철학을 삶의 구심점으로 삼을 수 있을까? 빌둥로즈는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