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
생각보다 가까이 있더라고요.
‘리틀 포레스트’는 제가 엄청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아마 10번도 더 보았던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원래 일본 만화가 원작인데요, 소싯적에 만화책 좀 보았던 제 기억 속에도 어렴풋이 남아 있던 데다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온다는데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요.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어느 순간 산이 좋고 숲이 좋고,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할 땐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는 조금만 있어도 피로가 몰려와서 쉬어도 쉬는 게 아닌 듯한 날들이었지요.
(글을 쓰다 보니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 탓도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곰곰이 해봅니다.)
그러던 중에 <리틀 포레스트>의 개봉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시작하는 첫 화면부터 마지막 하나의 순간까지 좋지 않은 장면이 없었습니다. 뒤늦게 이 영화를 홍보하거나 후기를 남겨보겠다는 건 아니지만 저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와 ‘이렇게 살아야지’하는 씨앗을 심어준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영화 속 주인공의 집이 있던 군위에 가서 잠시 대청마루에 앉아 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동네도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왔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날 이후 제 생활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느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럼 그때의 씨앗은 땅 속 깊은 곳에서 싹을 틔우기 위해 열심히 끙끙거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아직은 매서운 바깥이 무서워 월동 중일까요. 사실 저만 아는 질문이겠지요.
물론 영화에서 이야기했던 ‘리틀 포레스트’라는 것이 숲이 있는 작은 집이라거나 무조건 조용한 시골마을이어야 한다거나 장작을 패고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공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나 모습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영화의 대부분은 시골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혜원'은 자신의 '아주 심기'를 위해서 다시 도시로 나가 자기 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햇살을 맞으며 아침을 시작하고 작은 화분들을 보살피고, 간단하지만 따뜻한 밥을 먹으며 어디에서나 튼튼하게 살아 낼 뿌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내가 어디에 있건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하고 내 앞만 보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것을 보살피는,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 작은 틈이 자기 만의 리틀 포레스트라고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채로 냉장고 구석에 있던 상한 도시락을 먹는 게 아닌, 계절이 바뀌는 걸 온전히 실감하며 사시사철 내 손으로 직접 밥을 지어먹을 때의 마음이나 시간 같은 것도 말이지요. 그런 것들은 숲 속의 작은 집이나 도시의 작은 방이나 어디에나 있답니다.
여러분의 리틀 포레스트는 무엇인가요. 서늘해진 바깥공기가 얼굴에 닿는 아침의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 산책,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훌쩍 떠나는 여행, 아니면 내 옆의 털복숭이 친구를 쓰다듬으며 뒹굴거리거나 모든 일이 끝난 후 시원하게 맥주 한 모금 들이키는 것은 어떤가요. 저에게 이 모든 것이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리틀 포레스트인 것처럼요. 아주 작은 것들이기도 하고,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축복받은 사계절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지구가 아프니 점점 짧아지는 봄 가을과 유난스러워지는 여름 겨울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사계절은 모두가 사랑스럽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어제와 다른 공기를 마시는 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요. 그렇게 하나씩 편안한 여유를 찾고 작은 틈을 둔다면, 그때의 순간과 공간이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