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onance of Fear
⚠️ 이 글의 성격에 대한 안내
이 시리즈는 정답을 선언하는 글이 아닌, 변화하는 세계와 함께 조금씩 다듬어가는 사유의 기록입니다. 데이터와 연구가 축적되거나, 이후 편에서 더 깊은 맥락이 드러나면 일부 내용은 수정되거나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류가 아닌, 더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글을 '완성본'이 아닌 '진행 중인 사유'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940년 7월 1일, 워싱턴주 타코마 내로우스 다리가 개통되었다.
푸젓 사운드(Puget Sound) 해협 위로, 얇고 긴 선 하나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걸렸다.
주경간은 854미터.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경간 현수교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개통 첫날부터 시작됐다.
바람이 불면 다리가 흔들렸다.
상하로, 좌우로, 마치 물결이 지나가듯 출렁였다.
사람들은 그 흔들림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
‘질주하는 거티(Galloping Gertie).’
차를 몰고 건너면 롤러코스터 같았고, 무섭지만 또 묘하게 재미있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은 웃지 못했다.
설계자 레온 모이세이프(Leon Moisseiff)와 당시의 교량 설계 관행은, 주로 정적 하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다리는 차량 무게, 구조물 자중, 평균적인 풍압 같은 것들을 ‘버티는 물체’로 계산되었다.
하지만 타코마 다리는 움직이는 구조물이었다.
특히 그 다리는 유난히 가늘고 길었다.
가늘어질수록, 구조물은 바람 앞에서 ‘버티기’보다 ‘반응하기’ 쉬워진다.
바람이 다리 상판을 지나갈 때, 흐름은 매끈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뒤쪽에는 소용돌이가 생기고, 압력이 들쑥날쑥해진다.
그 미세한 요동이 상판의 진동 모드와 결합하기 시작하면, 흔들림은 단순한 ‘바람의 장난’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1940년 11월 7일, 목요일 아침.
시속 67킬로미터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폭풍이라 부를 정도의 바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할 만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바람은 ‘세기’가 아니라 ‘조건’이 달랐다.
다리는 처음엔 작게 흔들렸다.
몇 센티미터.
잠깐의 출렁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흔들림이 멈추지 않았다.
작은 흔들림이 끝나고, 다음 흔들림이 왔다.
그리고 또 다음 흔들림이 왔다.
그 리듬이, 구조물이 가진 리듬과 점점 가까워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공명'이라는 단어가 아니다.
그날 벌어진 일은, 외력이 고유진동수에 맞아떨어져 단순히 에너지가 쌓이는 장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리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동시에, 흔들리면서 바람의 힘을 다시 만들어냈다.
바람과 구조물이 서로를 자극하며, 진동이 스스로 커지는 자려진동(플러터)의 조건이 형성되었다.
에너지가 빠져나가기 전에, 되먹임이 먼저 다음 진동을 밀어 올렸다.
처음엔 5센티미터, 10센티미터였다.
그러다 30센티미터, 60센티미터로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하 흔들림만이 아니라, 다리 상판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이 내려갔다.
비틀림이 한 번 시작되자, 다리는 더 이상 ‘흔들리는 다리’가 아니라 ‘스스로 흔들림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었다.
그 과정은 오랜 시간 지속된 것이 아니다.
오전 내내의 일이 아니었다.
오전 11시 02분경, 다리 중앙부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상판이 찢기듯 떨어져 나가고, 케이블이 감당하지 못한 힘이 연쇄적으로 풀렸다.
현장에는 워싱턴 대학의 토목공학자 F. B. 파쿼슨(F. B. Farquharson)이 있었다.
그는 개통 이후 이 다리의 진동을 관측하고 있었고, 그날의 장면도 촬영으로 남았다.
또 한 사람, 운전자 레너드 코츠워스(Leonard Coatsworth)가 있었다.
그는 비틀리며 요동치는 다리를 건너다 차를 버리고 간신히 탈출했다.
하지만 차 안에 남은 그의 개, 터비(Tubby)는 끝내 구하지 못했다.
854미터의 주경간이, 바람 속으로 무너져 내려갔다.
다리는 푸젓 사운드로 떨어졌다.
단지 바람이 불었을 뿐인데.
단지 구조물이 흔들렸을 뿐인데.
바람에게는 무너뜨릴 의도가 없었을 것이고,
다리에게도 저항할 의도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의 리듬이 맞아 들어가는 순간,
의도 없는 파괴는 시작될 수 있다.
공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첫째, 진동수가 충분히 가까워야 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진동의 빠르기가 구조물이 원래 가진 진동의 빠르기와 비슷해질 때 공명이 시작된다.
둘째, 입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한 번의 큰 충격보다 작지만 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힘이 훨씬 더 위험하다.
타코마 다리는 공명이든 플러터든, ‘리듬이 맞는 순간 증폭이 시작되는 조건’을 보여줬다
바람과 상판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진동이 감쇠되지 않고 되먹임처럼 커졌다.
게다가 그 바람은 4시간 동안 같은 리듬으로 계속 불었다.
작은 흔들림이라도 같은 방향으로 계속 더해지면 점점 커진다.
파동은 매 진동마다 에너지가 쌓인다.
처음에는 5센티미터였던 흔들림이 점점 커져서 8미터를 넘어섰다.
이것이 ‘리듬이 맞아 증폭이 시작되는 조건’이다.
작은 입력이 반복되면 거대한 구조도 무너뜨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힘의 크기가 아닌 리듬의 일치다.
그리고 입력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코마 다리의 붕괴는 거대한 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은 흔들림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흔들림이 스스로를 키우는 구조 안에 들어갔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한 번의 강풍이 아니라, 같은 리듬의 반복.
한 번의 충격이 아니라, 되먹임으로 이어지는 증폭.
다리가 무너진 이유는 바람이 세서가 아니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자연 속의 다리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2016년 무렵부터, 정보 환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어떤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반박이 나와도, 정정이 이루어져도, 잠시 잦아드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마치 한 번 시작된 흔들림이, 감쇠되지 않고 계속 증폭되는 구조와 같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내용’이 아니다.
정보가 어떤 리듬으로, 얼마나 자주, 어떤 경로를 통해 되돌아오는가이다.
바람과 다리가 그랬던 것처럼, 정보와 인간도 서로를 흔들기 시작한다.
그 흔들림을 키우는 장치는, 이제 플랫폼의 추천 구조다.
Guillaume Chaslot은 2013년까지 YouTube에서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했던 엔지니어다.
퇴사 후 그는 자신이 만들었던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의 목표는 단순했다.
시청 시간을 최대화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더 오래 보는 콘텐츠를 더 자주 추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2016년 Chaslot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음모론 영상의 평균 시청 시간은 15분 32초였고, 일반 뉴스 영상은 3분 47초였다.
그의 분석에서는 음모론 계열 콘텐츠가 더 긴 시청 시간을 보이는 경향이 드러났다.
알고리즘은 음모론을 선택했다.
사람들이 4배 더 오래 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음모론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지도 않는다. 단지 시청 시간이 길다는 것만 학습한다.
바람이 다리를 무너뜨린 것처럼, 알고리즘 또한 아무 의도 없이 정보 환경을 왜곡한다.
2018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Zeynep Tufekci 교수가 YouTube 추천 경로를 추적했다.
검색어는 '운동'이었다.
알고리즘은 다이어트 영상을 추천했고, 그다음엔 극단적 다이어트 영상을, 결국엔 거식증 관련 영상까지 추천했다.
검색어는 '정치'였다.
알고리즘은 정치 토론 영상을 보여주다가 극단적 정치 의견을 담은 영상으로, 최종적으로는 음모론까지 이어졌다.
알고리즘은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시청을 유도했다.
극단적 콘텐츠가 더 강한 감정 반응을 만들어냈고, 감정 반응이 클수록 시청 시간이 길어졌다.
YouTube는 2019년 알고리즘을 수정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근본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시청 시간 최대화가 여전히 목표였다.
2020년 3월, COVID-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정보의 생산 속도가 급격히 증가했다.
백신, 치료제, 봉쇄 조치, 마스크 착용에 관한 뉴스가 하루에도 수천 건씩 쏟아져 나왔다.
Facebook 알고리즘은 이 혼란 속에서도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다.
MIT Media Lab이 2021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백신에 부정적인 콘텐츠는 평균 8.7회 공유되었고, 백신에 긍정적인 콘텐츠는 평균 1.2회 공유되었다.
Facebook의 알고리즘은 공유 횟수를 기준으로 학습한다.
사람들이 더 많이 공유하는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백신 부정 콘텐츠가 긍정 콘텐츠보다 7배 더 빠르게 퍼졌다.
같은 해 MIT 연구진은 Twitter에서 12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했고, 거짓 정보가 진실보다 6배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럴까.
거짓은 새롭고, 충격적이며, 감정을 자극한다.
진실은 대체로 예상 가능하고 평범하다.
거짓은 예상을 뒤집고 극단적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극단적인 내용을 더 많이 공유한다.
알고리즘은 그 공유 패턴을 학습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구조다.
2023년 3월 14일, OpenAI가 GPT-4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상위 10%에 들었고, SAT 언어 영역에서 710점으로 상위 7%를 기록했다.
뉴스 기사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매체 집계 방식에 따라 수치는 달라지지만, 발표 직후 기사 생산이 폭증한 것은 분명했다.
발표 후 첫 24시간 동안 주요 언론 매체에서 328개의 기사가 나왔고, 첫 주에는 2,847개로 늘었으며, 한 달이 지났을 때는 12,000개가 넘었다.
메시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같았다.
AI가 드디어 인간 수준에 도달했다거나, 변호사와 회계사, 의사까지 대체 가능하다거나,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Google Trends 데이터를 보면 'AI replace jobs' 검색량이 발표 후 3주 동안 400% 증가했다.
2024년 12월 이 검색량은 ChatGPT가 처음 공개되기 직전인 2022년 11월과 비교해 1,200%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ChatGPT가 처음 공개 된 후 2년이 지났지만, AI에 대한 검색량은 감쇠되지 않았다.
오히려 베이스라인이 영구적으로 상승해 버렸다.
타코마 다리는 공명에 의한 압력이 계속된 지 4시간 만에 무너졌다.
그리고, 정보 환경은 입력이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클릭하고, 공유하고, 머무르는 그 미세한 반응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증폭되어 돌아온다.
개인의 작은 선택이, 구조를 흔들고, 흔들린 구조가 다시 개인에게 같은 신호를 돌려준다.
이 되돌아옴이 ‘양의 되먹임’이 되면, 감쇠 대신 증폭이 시작된다.
에코 챔버는 공명 상자와 같다.
과정은 단순하다.
개인이 두려움의 신호를 보낸다.
클릭하고, 검색하고, 공유한다.
알고리즘은 그 신호를 학습해서 비슷한 내용을 찾아 돌려준다.
추천 목록에 올리고, 개인은 다시 그 신호를 받는다.
노출이 반복된다.
진동수가 일치한다.
개인이 가진 두려움의 리듬과 알고리즘이 반환하는 콘텐츠의 리듬이 같아진다.
타코마 다리에서 본 것과 같은 조건이다.
작은 입력은 개인의 클릭이고, 일치하는 진동수는 비슷한 콘텐츠가 되어 돌아온다.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알고리즘은 추천을 계속한다.
결과는 진폭의 증폭이다.
개인의 두려움이 집단의 공포가 된다.
공명 조건이 완벽하게 만족된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뿐이다.
타코마 다리를 흔든 것은 자연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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